에쿠니 가오리 《소란한 보통날》

지킬 것은 엄격히 지키지만, 인정할 것은 또 쿨하게 인정하는 가족들의..

by 우주에부는바람

에쿠니 가오리의 1996년 작품이다. 조금 오래 되었다. 원제는 <싱크대 아래 뼈> 정도로 해석이 되나본데, 소설 속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주는 ‘타닥타닥 산’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에 나오는 무서운 이야기의 하이라이트 부분에 잠시 언급된다. (그게 왜 무서운지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와 일본의 싱크대 구조가 다른 건가...) 엄마와 아빠, 그리고 세 딸과 막내 아들로 이루어진 미야자카씨네 가족의 이야기이다.


“... 오늘은 엄마의 마흔아홉 번째 생일이다. 식구들 생일이면 언제나 엄마가 생일 맞은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지만 1년에 딱 한 번, 엄마 생일에는 항상 외식을 한다...”


이 가족에게는 몇 가지 남다른 룰이 있다. 그러니까 위와 같이 식구들의 생일날에는 엄마가 모두를 불러 집에서 원하는 음식을 해주지만, 엄마의 생일에는 무조건 외식을 해야 한다거나, 스무 살이 넘어서는 생일날 선물이 아니라 돈으로 받는다거나, 유치원 입학을 제외한 모든 입학식이 있는 경우 그 전날 사진관에서 가족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등의 세세한 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러한 미야자키씨네의 룰은 가족들 간의 불평불만을 야기한다거나 이로 인한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 바깥의 세계와 가족 내부 구성원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 이를 치유하고 원치 않는 갈등에 휘말린 구성원을 북돋기 위한 방편으로 아주 적절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니 소설의 주인공이자 이 집의 셋째 딸인 고토코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아이를 두고도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 관심도 있고, 후카마치 나오토와 함께 여행할 수 있다는 것도 무척 기뻤다. 하지만 거절했다. 집에서 가족들과 보내는 겨울방학이 좋았고, 게다가 후카마치 나오토가 그 말을 꺼낸 것은 크리스마스에 가족끼리 만두를 만들기로 이미 약속한 후였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 미야자키 가족 공동체가 폐쇄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자신들만의 룰을 가지고 있는 어떤 공동체라고 해서 그것을 폐쇄적인 집단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옳지 않음을 꽤 유효적절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들 가족 구성원들은 몇 가지 원칙을 제외한다면 나머지 사항들에 대해서는 거의 완전한 오픈 마인드를 보여준다.


그러니 둘째 딸 시마코가 왠 여자를 데리고 와서는 그 여자가 아이를 낳는다고 말을 할 때에도, 첫째 딸 소요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자신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고 할 때에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대학 진학도 취업도 결정하지 않고 그저 무위도식을 할 때에도, 막내 리쓰가 자신의 조금은 오타쿠스러운 취미 생활 때문에 학교로부터 정학을 맞아야 하는 때에도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라 서로에 대해 하 가지고 있는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미야자카씨네의 기준으로 이를 보듬어 안는 것이다.


“때로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대개는 낮에 인생을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날씨가 좋은 낮. 싸늘한 부엌에서. 전철에서. 교실에서. 아빠를 따라간 탓에 혼자서만 심심한 책방에서. 그런 때, 내게 인생은 비스코에 그려진 오동통한 남자애의 발그레한 얼굴처럼 미지의 세계이며 친근한 것이었다. 내 인생, 아빠 것도 엄마 것도 언니들 것도 아닌, 나만의 인생.”


그러니 여기 엉뚱한 룰로 가득한 미야자키네 가족들, 시도 때도 없이 한 자리에 모이는 듯 한 외양의 가족 사이에 있는 소설 속의 나, 고토코가 위와 같이 ‘나만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도 지극히 자연스럽다. 그러니까 이들은 많은 것을 공유하고 간섭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 그러니까 아무리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인생은 누군가의 인생일 뿐 가족 전체의 인생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는 꽤나 확고한 주의주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너무 마음에 드는 가족관이라고나 할까.



에쿠니 가오리 / 김난주 역 / 소란한 보통날 (流しのしたの骨) / 280쪽 / 2011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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