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희망의 불씨마저 훅, 불어 꺼버리는 이 작가의 불온한 악취미...
노골적이고 불온한, 이라는 두 단어로 작가의 단편 소설들을 요약할 수 있었다. 이제 장편 소설로 다시 돌아왔지만 작가가 들춰내는 불온한 성을 향한 노골적인 시선은 여전하다. 게다가 더욱 날카롭게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노골적이고 불온한 선택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제 한 아이의 어미가 된 윤영의 신산한 삶의 기록이 펼쳐진다.
“... 고등학생인 준영과 대학생 민영의 앞날이 창창했지만, 세 아이를 키우느라 야금야금 늘어난 빚이 제법 많았다. 아버지, 엄마, 나까지, 어른 셋이 벌어도 학비는 커녕 먹고사는 일도 팍팍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앓아누웠다. 겹경사 줄초상이라고 했다. 항암 치료 같은 건 엄두도 못냈다. 아버지는 스스로 이불을 깔고 자리에 누웠다. 없는 집은 하루하루가 늘 진창이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윤영이 왕백숙 식당에서 일하는 동안 갓난쟁이를 돌보는 남편, 그러나 이미 자신의 가족사 내부에서 불운을 타고난 듯한 윤영의 삶은 윤활유가 바짝 말라버린 톱니바퀴처럼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집안을 일으켜 세울 재목으로 인정받았던 여동생 민영은 집안의 돈이란 돈은 모두 가지고 날라서 감감 무소식이고, 엄마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이상한 사내와 함께 산다고 하고, 남동생 준영 또한 결국 동네 아줌마로부터 돈을 빌려서 사라짐으로써 내게 짐을 지운다.
그 사이 나는 홀 서빙으로 시작했던 왕백숙 식당에서의 일을 이제 본격적인 매춘으로 이어가고 있다. 아무리 힘들게 일해도 들어오지 않던 돈이 쉽게 들어오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다. 왕백숙 식당을 들락거리는 손님, 왕백식 식당의 왕사장, 왕사장의 아들 태민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윤영을 눕히고, 윤영 또한 서서히 자신의 그런 생활에 익숙해져 간다.
“아이 생각을 하면 어디선가 녹슨 철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나를 따르지 않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분했다. 어린것에게 어미로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떨어져 지내니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웠다. 그런데도 가볼 생각을 못 했다. 나도 아이가 두려웠다. 아이가 나의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골에 내려 보냈던 아이를 다시 데려오고, 자신 또한 왕백숙 식당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곳에 취직을 하고, 남편 또한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는 대신 취직을 하고, 시간이 지나도 일어설 줄 모르는 딸 아영이를 병원에 데려가며 뭔가 새로운 출발을 하려는 순간, 그러나 작가는 그렇게 윤영이 돌파구를 쉽게 찾아가도록 만들지 않는다. 취직한지 며칠만에 남편은 사고를 당하여 병원에 입원하고, 윤영의 동생 준영은 돈을 갖고 튀어 버리는 것이다.
“남편의 입원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원무과에서는 매달 중간 결산을 요구했다. 버는 돈을 전부 병원에 갖다 바쳤다. 어느 날부터는 엄마가 부업을 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장신구나 구슬을 옷에 붙이는 일을 했다. 아이는 엄마 옆에 앉아 구슬을 만지작거리며 하루를 보낼 것이었다. 남편이 퇴원을 해야 아이의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언제나 수중의 돈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문득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주인공을 몰아붙이는 작가가 야박하다고 여겨본다. 작은 희망의 불씨라도 생겼다, 하는 찰나에 또다른 절망의 나락을 짜잔 보여주고 있으니 이또한 악취미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래 갈 때까지 가보겠다는 거지, 소설을 읽는 동안 두어 번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사실 이런 소설을 읽는 일이 나에게는 힘겹다. 설령 이것이 우리들 삶에 만연한 포악한 진실이일지라도 말이다.
김이설 / 환영 / 자음과모음 / 195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