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 《두근두근 내 인생》

두근두근하는 심정으로 신파의 외피를 살짝 벗겨 보면...

by 우주에부는바람

*2011년 6월 2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사랑스럽고 천재적이며, 능청스럽고 찰지기 그지 없는 젊은 작가 김애란의 장편 소설이다, 라고 쓰고보니 조금 과했다. 그녀의 장편은 역시 훌륭하지만 어떤 한계를 뛰어넘은 경지를, 아니 이보다는 경지에 도달할 가능성에 대한 확인을 하도록 돕지는 못하고 있다. 역시 소설에 천재라는 것은 없나보다, 라는 작은 한탄을 뒤따라 했지만 그렇다고 이 작가의 첫 장편을 좋지 않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저 김애란의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아쉽다는 말이다.


“바람이 불면, 내 속 낱말카드가 조그맣게 회오리친다. 해풍에 오래 마른 생선처럼, 제 몸의 부피를 줄여가며 바깥의 둘레를 넓힌 말들이다...”


김애란의 문장은 역시 마음에 든다. 나어린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이 절묘한 표현은 때때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깃털처럼 자유로운 작가의 문장은 훌쩍 날아오르고, 그 깃털이 온전히 가서 닿은 곳을 살펴보던 독자는 아, 그래 바로 저기가 이 깃털의 착지 지점이어야 했던 것이야, 라며 박수를 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러한 문장의 맛깔이 어떻게 탄생했을까, 하는 호기심은 아래의 내용을 통해 슬쩍 밝혀진다.


“……‘몸의 부피’를 그냥 ‘몸피’라고 바꿀까? 아니야, 두 문단 뒤에 다시 몸피라는 단어가 나오니까 처음에는 그냥 풀어쓰는 게 좋겠어. 뜻도 중요하지만 글자 수도 중요하니까. 읽는 사람의 숨 박자에 맞게, 리듬을 살릴 수 있는 단어로, 그래. ‘철자’와 ‘활자’와 ‘글자’ 중에 어느 것을 쓰는 게 적당할까? 세 개 다 뜻이 다르지 않나? 그래도 ‘베껴쓰다’라는 표현에는 철자가 가장 어울릴 것 같아. 그 맘때 아이들은 글씨를 쓰지 않고 그리니까...”


소설의 첫 문장은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어느 순간 소설 속 주인공인 열일곱살 아름이가 쓰는 소설이 되고, 바로 그 아름이의 창작의 고민은 작가 김애란의 창작에 대한 고민과 은근슬쩍 연결되는 식이다. 그러니까 소설 속 문장들은 이렇게 끊이지 않고 말을 둥글리고 또 둥글리는 작가를 따라 세상의 많은 것들을 섭렵하며 점점 제 모양을 갖추는 것이다.


『“대수야.” “응?” “새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새똥으로 위장하는 곤충이 있대..” “근데?” “그게 꼭 너 같다.”』


문장만큼이나 이 작가가 잘 다루는 것은 또한 두 사람의 리듬감 넘치는 대화다. 사실 앞서서 소설을 읽은 지인이 이 책을 신파, 라고 하였지만 소설의 처음 부분을 읽을 때는 도무지 그 이유를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열 일곱 살 소년과 소녀가 만나고 얼떨결에소녀가 임신을 한 후, 그 소녀를 향해 자신이 아버지이기 힘든 이유를 어수룩하게 읊어대는 소년과 그 소년을 향하여 일갈하는 소녀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피식 웃지 않을 수 없다.


‘실제 나이 17세. 신체 나이 80세. 누구보다 빨리 자라, 누구보다 아픈 아이 아름. 각종 합병증에 시달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아름...’


하지만 이 어린 소년과 소녀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희귀병을 앓게 되고, 이제 겨우 서른 넷에 팔십살의 몸을 가진 열 일곱 살 아이의 아비와 어미가 되어 있는 그 옛날의 소녀와 소년이 등장하는 즈음이 되면, 얼핏 신파의 징조를 읽을 수 있다. 그리고 그신파의 일단은 아버지가 된 소년과 노인의 몸을 가진 소년인 아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그 신파는 꽤 앞서 나간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 “그리고 마음이 아플 땐 반드시 아이처럼 울어라.” “아빠?” “응?” “전 이미 아이인걸요.” “그래, 그렇지……”』


신파로 물들여져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울음 유발의 인자가 도처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소설을 따라가다보면 그저 담담히 이 소년을, 그리고 그 소년의 아비와 어미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니까 갑자가 생긴 아이를 결국 낳기로 한 열 일곱 소년과 열 일곱 소녀의 결정을 받아들일 때, 늙어가는 자신의 몸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이 소년의 웃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제아무리 힘겹다 한들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 무엇이냐, 하는 적당한 치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김애란 / 두근두근 내 인생 / 창비 / 354쪽 /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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