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윌리스 《미스터 세바스찬과 검둥이 마술사》

재미있는 이야기의 전달이라는 소설 본연의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 본연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충실한 소설을 읽었다. 검둥이 마술사인 헨리 워커의 일대기를, 헨리 워커 본인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주변의 인물이 남긴 기록이나 그들의 구술을 통하여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떻게 해서 헨리 워커는 마술사가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미스터 세바스찬이 등장한다), 게다가 백인인 그는 왜 검둥이 마술사가 되어야 했는지, 꽤나 흥미진진하다.


“... 키가 크고 뼈만 앙상한 헨리는 불운해 보였고, 무엇보다 흑인이었다. 녹색 눈의 흑인 - 검둥이 - 이라는 게 결국 제러마이어가 그를 채용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이 바닥에서 마케팅에 유용하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메리트다. 사실 젖소가 별거 아니듯 마술사도 별거 아니다. 그러나 검둥이 마술사라면, 요컨대 머리 둘 달린 젖소라면 얘기가 다르다...”


소설은 모두 일곱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데, <긴 이야기>는 이 중 첫 번째 챕터로 현재의 헨리, 그러니까 제레마이어가 운영하고 있는 ‘제러마이어 모스그로브의 차이니즈 서커스단’에서 검둥이 마술사로 활동하고 있는 헨리의 이야기로 포문을 연다. 검둥이라는 메리트 이외에는 전혀 가진 것이 없는 마술사 헨리를 괴롭히는 청년들과 그들에게 헨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 서커스 동료 루디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마지막 순간 헨리는 실종된다.


두 번째 챕터인 <비밀의 개>는 서커스단의 바람잽이인 JJ의 구술 기록이며, 여기에서는 어머니를 잃고 실의에 빠진 헨리가 마찬가지로 모든 의욕을 상실한 아버지 그리고 빛나는 여동생 해나와 함께 생활하는 호텔, 그리고 해나가 몰래 먹을 것을 가져다주는 개와 헨리가 찾아가는 호텔 룸 702호의 의문의 사내 미스터 세바스찬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세바스찬에게 배우는 마술에 모든 희망을 걸고, 그와 마술사의 맹세까지 한 헨리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 해나와 해나의 개, 그리고 미스터 세바스찬은 헨리 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 백인이 흑인이 되다니, 이 시대에? 왕이 거지가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캐리 그랜트가 문둥이가 되려는 셈이고, 메릴린 먼로가 이빨 빠진 여드름투성이 트럭 운전사가 되려는 셈입니다. 세 발 달린 강아지가 남은 발 중 하나를 과학을 위해 기증하겠다는 셈이죠. 딱 그짝이죠, 안 그래요?”


세 번째 챕터인 <제레마이어 모스그로브의 차이니즈 서커스단의 경영자 제레마이어 모스그로브의 일지에서>에서는 제목 그대로 제레마이어 모스그로브의 일지에서 발췌한 기록이다. 여기에서는 헨리가 동생을 잃은 후 아버지와 함께 거리에서 카드 도박으로 먹고 살아가다가 톰 해일리를 만나 검둥이 마술사로 거듭나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드디어 백인 꼬마 헨리는 사라지고 검둥이 마술사 헨리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네 번째 챕터는 <골화증 아가씨의 러브송>이다. 헨리와 함께 서커스단에 있었던 골화증 아가씨가 들려주는 헨리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를 잃고 동생을 잃은 헨리, 그리고 톰 해일리와 만난 이후 아버지도 떠나보내야 했던 헨리는 이제 그 톰 해일리 마저 죽음의 저편으로 보낸다. 그리고 이제 다시 백인으로 돌아온 헨리는 군대에 가서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마술처럼 생환한 이후 카스텐바움에 의해 캐스팅 되고, 최초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매리앤 라플뢰르를 만나게 된다.


“... 한 소년이 아홉 살 생일을 맞기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열한 살 생일을 맞기 전에 인생의 빛과 같았던 여동생을 뺏기고, 절망한 아버지는 사신의 품에 안긴 채 거기 그렇게 누워 아들과 세상이 멀쩡히 보는 앞에서 매일 조금씩 죽어간다면…… 네, 이런 게 진정한 상실이죠. 육신이 찢기고 영혼에서 피가 흐르는 상실...”


매리앤 라플뢰르와 함께 모든 상실의 아픔을 딛고 일생일대의 마술쇼를 기획한 헨리는 드디어 관객들을 깜짝 놀라키는 데에 성공하지만 일반적인 마술쇼와 차원을 달리한 그의 마술쇼는 오히려 공연 기획자들로부터 외면을 받는다. 그리고 이에 격분하고 제정신을 잃은 카스텐바움은 매리앤 라플뢰르를 죽이게 되고, 헨리는 또다시 이 모든 것들로부터 떠난다.


이어지는 다섯 번째 챕터인 <잃어버린 시간>은 헨리의 상상 혹은 환상 속의 이야기이다. 이곳에서 헨리는 미스터 세바스찬을 만나고, 그를 통하여 동생 해나, 그리고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매리앤 라플뢰르, 그리고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하지만 이들 세 사람 중 누구도 자신에게 남아 있기를 원하지 않고, 헨리는 다시금 혼자가 되어 현실로 돌아오게 될 수밖에 없음에 대하여 독자들은 언질을 받는다.


여섯 번째 챕터인 <정의>는 해나의 부탁으로 헨리를 찾아 나선 사립탐정 카슨 멀베이니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부분에 와서야 미스트 세바스찬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여겨졌던 해나가 사실은 그와 함께 부녀의 연을 맺고 살아 있음을, 그리고 이제 자신의 오빠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이 둘의 재회에 대한 기대를 하지만 소설은 이어 일곱 번째 챕터인 <드라이브>로 넘어가고, 첫 번째 챕터에서 헨리를 싫어하던 백인 청년들의 시점으로 넘어간 일곱 번째 챕터에서도 이 불운한 헨리는 여전히 동생의 존재에 대해 모른 체 조금씩 사위어 간다. 그렇게 길고 긴 이야기가 마무리되고, 그러면 누구든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소설의 맨 처음에 실린, 소설을 읽기 시작할 때는 영문을 알 수 없었던, 바로 그 편지를 읽게 될 것이다. 예측컨대, 신기하게도...



대니얼 윌리스 / 엄일녀 역 / 미스터 세바스찬과 검둥이 마술사 (Mr. Sebastian and the Negro Magician) / 문학동네 / 358쪽 / 2011 (2007)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란 지브코비치 《환상의 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