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크리스테바 《포세시옹, 소유라는 이름의 악마》

개인적인 또는사회적인 기호와 정서적인 코드들의 거대한 꼴라쥬...

by 우주에부는바람

*1999년 10월 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책의 뒷면에 실린, 조금은 낯이 간지러워 신문 하단의 광고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문구가 보인다. '세계적인 석학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새로운 밀레니엄의 글쓰기로 시도한 추리소설.' 이중 '새로운 밀레니엄의 글쓰기'라는 쪽에 주목하여 책읽기를 시도했다면 다행이겠지만 '추리소설'이라는 대목에 현혹된 사람이라면 책을 읽는 내내 주저하고 망설여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추리소설'이 가지는 경박한 호기심과 과장된 해결은 이 책의 어디에도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은 잘려진 목, 잠재적인 범죄, 의도하지 않은 살인이라는 세 개의 의미심장한 챕터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소제목의 의미심장함만으로 추리소설이란 용단을 내리기는 어렵다. 사건은 금방이라도 소멸될 것처럼 느릿하게 진행되고, 인물들은 사건의 핵심에 한 발을 걸치고 있을 분 그 이상 다가서지 않는다. 작가는 우리에게 작중인물의 일거수일투족을, 아니 그 속내까지를 성심성의껏 알려주지만 사건을 푸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는 그리 많이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다들 너무 차분하고, 심지어는 살인을 자신과는 무관하지만 일상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객관적이어서, 실제 일어난 것이 실제 살인 사건이기는 한 것인지 의심하게 될 정도이다.


산타 바바라라는 이름을 가진, 국가인지 아니면 하나의 도시인지 아리송한 곳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글로리아는 목이 없는 시체로 발견되었고, 그 핵심적인 사건을 둘러싼 많은 인물들과 그들의 개인적인 또는 사회적인 기호와 정서적인 코드들이 마치 거대한 꼴라쥬 작품처럼, 응집력 모자란 가파른 모래처럼 작품 여기저기서 흘러 내린다. 글로리아 사건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보고 있는 경찰 서장 릴스키나 신문기자이자 사설탐정인 들라쿠르 정도가 작품 전체를 조망하고 사이사이의 소소한 사건과 사실들을 전달하는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소설적 장치조차 조심스럽게 이루어지고 있어 쉽사리 그들의 개입을 알아차라지 못하게 만든다.


오히려 작품은 절반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는 잠재적인 범죄라는 챕터를 통해 보여주는 개개인과 사회 조직의 통합적 점검이나 정치에 대한 불신, 만연한 심리적 이상 증세의 설명에 몰두하고 있다. 그야말로 우리 내부의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사회적이고 심리적인,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인자에 주목하기를 바라는 듯하다. 하지만 쉽사리 이를 수긍하는 등장인물은 없다. 모든 이들은 자신이 실제적인 범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하고, 살인 사건의 일각을 밝히는 데에 일조하고, 그로 인해 자신이 살인 사건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사실로부터 평온을 찾는다. '우리가 사고하는 척할 때, 사고가 가식일 때, 바로 범죄가 결국 회피할 수 없는 진실을 외친다'는 들라크루의 생각은 작품을 통한 작가의 생각에 밀착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적 요인의 근저에 포세시옹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존재한다. 상처받은 사람이 갖게 되는 감정, 으로서의 소유라고 해석될 수 있는 작품의 제목을 통해서만 추리 소설의마지막 대단원인 사건의 해결이 가능해진다.


고백컨대 크리스테바의 다른 소설 <사무라이>와 더불어 나는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책읽기로 일관하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총알택시를 타고 있는 승객이 창밖으로 보이는 밤풍경을 쳐다보는 것과 비슷하다. 당장에라도 전복될 것 같은 차의 내부에서 바깥을 향해 잔뜩 몸을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고 적극적인 책읽기로 덤벼든다면 이렇게 쉽게 끝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잘 아는 형의 잘 모르는 친구 하나는 박상륭의 <칠조어론>을 읽기 위해 책꽂이 세 개 분량의 책을 사서 읽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정작 <칠조어론>을 읽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런 긍정적인 우를 회피하고자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소극적 책읽기라고 하면 변명이 될까... 여하튼 갑작스런 부름에도 쉽게 자신을 노출시키는 그런 책은 아니다는 것이다.



줄리아 크리스테바 / 김인환 역 / 포세시옹, 소유라는 악마 (Possessions) / 민음사 / 313쪽 / 1999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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