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겐지 《천년 동안에》

범접하기 어려운, 종과 종을 넘나드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혼의 결착.

by 우주에부는바람

*1999년 8월 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이 소설에 대한 극찬을 씨네21에서 읽은 이후에야 본격적인 독서를 계획한다. 작가의 몇몇 작품을 읽으려다가 그만 두었떤 경험이 있던 탓이다. 형용사는 가급적 피하고 명사에서 명사를 향해 도움닫기를 하듯 뛰어넘는 작가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을 뿐더러 세상을 관통하는 자신만의 길이 여기 있다는 듯 거드름(?) 피우는 꼴도 마뜩치 않았던 탓이다. 오만한 모든 자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면서, 작자의 진면목을 발견하자는 생각보다는 꼴사납다는 오기의 허상이 미리 작가와 독자인 나 사이를 방해한 꼴이다. 그래서 더욱이 이번만큼은 하는 심정으로 득달스럽게 책을 읽어 나갔다.


하지만 득달스럽게 달려들기만 하였지 책읽기의 진도는 숭숭하였다. 책을 한 페이지 읽는 동안, 한 페이지 이상을 메모하게 되니 그 진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줄거리를 적어보기도 하고, 뇌에 찰싹 달라붙는 문구들을 찾아내어 밑줄을 긋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다시 한 번 적어보는 반복 학습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 책을 잃어버리고, 그 메모노트까지 잃어버려 정신의 공황 상태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다시 나는 책을 집어 들었고, 여전히 책을 읽고 있었다.


작가는 천년이라는 긴 시간을 살아낸 나무인 나를 일인칭 나레이터로, 그 나무가 있는 숲속의 한 가지에 목을 매고 죽은 여인의 자궁에서 추락과 함께 태어나 흐르는 자로서 살아가는 이인칭 너를 주인공으로 삼아 현대 일본 사회의 전면을 통찰함과 동시에, 인간이 가져야 하는 정신의 지순한 가치는 흐르는 경우에만 존재함을 시종일관 유언의 압력으로 행사한다.


게다가 형식면에서는, 생각하는 나무인 나의 과거, 그리고 네가 태어난 시점으로서의 현재, 이와 함께 생명의 존속조차 불확실한 너를 통해 내가 바라보는 미래라는 세 가지 시점이동시에, 그리고 불연속적으로 등장한다. 가히 내용과 형식의 스케일에 있어서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에 버금가는 모양을 보여준다. 때문에 쉽사리 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다는 것조차 쉽지 않다. 작가가 보여주는 식물인 나와 인간이 너, 그리고 동물인 원숭이 사이의, 가히 혼의 결착이라고 부를만한 교감에 한치의 어긋남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눈은 밝아지는데 입은 그저 조금 달싹거릴 수 있을 뿐이다.



마루야마 겐지 / 김난주 역 / 천년 동안에 / 문학동네 / 전2권 1권 325쪽, 2권 381쪽 / 1999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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