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작가의 감각이 팬데믹 이후 미국의 심연으로...
“3월의 그날 아침에 내가 몰랐던 것은 이것이다. 나는 다시는 내 아파트를 보지 못하리란 사실을 몰랐다. 친구 한 명과 가족 한 명이 그 바이러스로 죽으리란 것도 몰랐다. 딸들과의 관계가 내가 결코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달라지리란 것도 몰랐다. 내 인생 전체가 뭔가 새로운 것이 되리라는 것도 몰랐다.” (p.22)
《바닷가의 루시》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내 이름은 루시 바턴》(2016), 《무엇이든 가능하다》(2017), 《오, 윌리엄!》(2021) 이라는 세 권의 책에서 이미 다룬 바 있는 루시와 윌리엄을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이다. 동시에 이 소설의 주인공은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의 상황이기도 하다. 뉴욕에 살고 있던 윌리엄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시작한 시점에 루시를 끌고 뉴욕을 벗어나 메인 주로 거처를 옮기고, 거기서 소설은 시작된다.
“루시, 사람들은 힘들게 살아가, 그리고 힘들게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그냥 이해하지 못해. 나도 그냥 이해하지 못하잖아... 게다가, 우리는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바보로 느끼게 하잖아. 그건 좋지 않아.” (p.216)
또한 이 소설에는 백인 하층민의 게급적 위치에 대한 언급 또한 심심찮게 등장한다. 루시는 바로 이 백인 하층민의 딸이었고, 다만 이제는 성공하여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루시의 오빠와 언니는 아직 그 계급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윌리엄은 조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통해 한 번도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한 계급에 속한다. 루시와 윌리엄은 결혼하여 두 딸을 두었지만 오래 전 이혼하였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 나는 너무 슬펐다. 어린 시절에 고립되어 보낸 두렵고 외로운 시간은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내 삶의 각기 다른 시점에 깨달은 것처럼―깨달았다.
내 어린 시절은 록다운이었다.” (p.228)
이혼을 하였지만 루시와 윌리엄은 이제 한 집에서 코로나19를 피하고 있는 중이다. 루시는 작년에 남편 데이비드를 잃은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이다. 윌리엄 또한 나이 차이가 나는 에스텔과 이혼하였다. 어린 딸 브리짓은 에스텔과 함께 산다. 윌리엄은 칠십이 넘었고 루시의 나이도 적지 않다. 코로나19에 취약한 나이이고, 루시는 코로나19로 인한 동료 작가의 죽음을 겪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할 것이고, 그러고 나면 더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아주아주 오래전에 나는 육 년 동안 바람을 피우고 있는 한 여자를 알았고, 상대 남자는 발기불능이었다. 내가 그녀에게―나는 당시에 그녀를 잘 알았다―발기불능인 남자와 바람을 피우는 건 어떤 기분인지 물었다. 그가 신장 수술을 받았다던가 그랬는데, 그러다 그렇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여자는 내게 말했다―그녀는 조용히 말하는 사람이었고, 내게 작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루시, 그 사실이 만드는 차이가 얼마나 작은지 알면 놀랄 거예요.”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그녀가 전적으로 맞았다고. 그녀는 틀렸지만, 또한 전적으로 맞았다.』 (pp.234~235)
소설을 읽는동안 2019년에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2020년 전세계로 퍼진 이후 뉴욕에 관련한 기사도 읽은 기억이 난다. 땅을 파고 나무관을 층층으로 쌓아 시체를 처리하였던 당시의 기사가 떠올랐는데, 소설 속에 고스란히 묘사가 되고 있다. 살펴보니 2020년은 트럼프의 집권 시기였고 그해 말 선거에서 트럼프는 바이든에게 패했다. 백인 겅찰에게 목이 눌려 사망한 흑인 조지 플라이드 사건은 2020년 5월에 발생했다.
『한밤중에 윌리엄이 갑자기 한 번 코 고는 소리를 낸 뒤 킁하며 일어났고, “루시?” 하고 말했다. 내가 “왜?” 하고 말했다. 그가 “당신 거기 있어?” 하고 말했고, 그래서 나는 “바로 옆에 있어” 하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곧바로 다시 잠들었다. 숨소리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나는 깨어 있었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스스로가 큰 무게를 두는 사람들―그리고 장소들―그리고 사물들―과 함께 산ㄷ. 하지만 우리는 무게가 없다, 결국에는.』 (p.245)
루시와 윌리엄은 이혼하였지만 서로의 상실을 이해한다, 혹은 어느 정도 이해하려 애쓴다. 동시에 자신의 두 딸을 사랑하는 마음과 그들을 지키려는 노력에서 함께 한다. 그러다보니 두 사람은 이제 같은 침실을 쓰는 사이가 되고, 아예 뉴욕에서 메인주로 생활 기반을 옮기기로 결정한다. 남은 삶이 길지 않으니 이러한 현재의 결정은 두 사람 중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나는 조용히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계속 이것에 대해 생각했다. 내 생각은 이랬다. 그날 시카고 외곽에서 보낸 그 한 시간 동안, 나는 어린 시절에 느낀 수치심을 다시금 아주 깊이 느꼈다는 것. 그런데 내 인생 전체에서 계속 그렇게 느꼈다면 어땠을까. 평생 가진 모든 직업이 내가 제대로 먹고살 만큼 충분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내가 내 종교와 내 총을 조롱한 이 나라의 부유한 사람들에게 늘 멸시를 당했다면 어땠을까. 나는 종교도 없고 총도 없었지만, 이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문득 알 것 같았다. 그들은 내 언니 비키와 같았고, 나는 그들을 이해했다. 그들은 계속해서 가난하다고 느껴왔고, 멸시받았으며, 더 이상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p.310)
정확하진 않지만 루시 바턴을 주요 인물로 등장시키는 작가의 다른 소설들은 인물들의 사적인 측면에 치중하고 있었다. 이번 소설은 충분히 사적인 관계를 다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공적인 영역의 이야기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바닥을 드러낸 미국 사회의 진면목에서 눈 돌리기 어려웠던 탓인가, 싶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인물의 심리를 드러내는 방식에 여전히 크게 동감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Elizabeth Strout / 정연희 역 / 바닷가의 루시 (Lucy by The Sea) / 문학동네 / 387쪽 / 2024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