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안녕, 인공존재!》

거대하게 허황된 이야기는 여전하되 사회적 은유의 맥락은 심연 속으로...

by 우주에부는바람

배명훈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과학소설을 쓰면서도 어떤 사회적 관심을 놓지 않는 작가의 마인드가 좋았는데, 그 마인드를 뒷받침하는 장르 문학의 재미라는 요소는 조금 희미해진 느낌이다. 본격 문학과 장르 문학의 완벽한 조합이 전달하던 이종교배의 재미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특히 소설집의 후반부에 실린 단편으로 넘어갈수록 그렇다.


「크레인 크레인」.

“태초에 거대한 크레인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기중신이라 불렀다. 기중신이 바다 깊은 곳에서 대지를 끌어올리시고 신성한 갈고리로 산과 산맥을 걸어올리시니 대지가 비로소 하늘에 가까워졌다...” 비행학교에서 만난 은경이 중국으로 넘어가 무녀 노릇, 그렇지만 우리가 보기엔 거대한 크레인의 기사 노릇을 하고, 나는 그런 은경을 찾아서 중국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마을과 세상을 이어주는 크레인을 움직이는 은경과 함께 그곳에 남는다. 태초에 말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크레인이 있었다는 허황된 설정임에도 그 설정에 임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가 사뭇 진지하니 재미있다.


「누군가를 만났어」.

몽골의 한 장소, 고고심령학자인 (물론 고고심령학이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옛날 혼령들을 연구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그런데 이곳에 오래전 공룡의 화석을 탐사하는 팀과 자신들이 떨어뜨린 포탄을 찾아서 회수하겠다는 팀이 모이면서 꽤 혼란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들은 차례차례 누군가를 만나고, 드디어 나 또한 누군가라고 여겨지는 우주 너머로부터 왔으리라 여겨진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는데...


「안녕, 인공존재!」.

한때 사랑하였던 여인인 신우정이 죽으면서 나에게 남긴 ‘존재’라는 이름으로 명명하기게 되는 그야말로 어떤 존재에 대한 탐구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세상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 알 수 없는 그 존재를 끌어안고 이렇게 저렇게 그 존재의 이유를 찾던 나는 결국 그 존재를 우주로 보내기로 하고, 우주로 날아간 ‘존재’는 존재폭발을 일으키며 드디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게 된다.


「매뉴얼」.

휴대폰 매뉴얼로 글을 배우고, 매뉴얼을 보면서 이야기를 상상하는 나의 조카 미성이의 이야기이다. 운명적으로 미성에게 신경을 쓰던 나는 언니 내외의 사고로 아예 미성이를 맡게 되고, 미성이는 계속해서 매뉴얼을 앞에 두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확대해 나간다.


「얼굴이 커졌다」.

얼굴이 커지는 킬러의 비애를 읽다 보면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개머리판을 얼굴로 미는 바람에 초점이 어그러지는 킬러, 얼굴이 커서 은폐가 되지 않는 킬러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여기에 킬러들의 연애라고 할 수 있는 나와 은경의 이야기 또한 부자연스러운 것이 흥미롭다. 프로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커지는 이유야 알바 없으나, 이처럼 비열한 프로페셔널들의 얼굴이 자꾸 확대된다면 꽤나 볼만하겠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고위 공직자나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정치인들의 얼굴은 마음껏 커질 것이니...


「엄마의 설명력」.

지동설에 대항하는 천동설 주장자인 엄마를 둔, 그 엄마의 거짓말에 계속해서 속아 넘어가야 하는, 게다가 피가 섞이지 않은 입양아인 나의 이야기이다. 인도와 한국을 넘나들고, 지동설과 천동설을 경합시키고, 속이고 또 속이는 엄마와 속고 또 속는 아이의 어설픈 화학반응이 어설프게 이어진다.


「변신합체 리바이어던」.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의 조종사였던 한 사내가 누설하는 변신합체 로봇들, 그 로봇들의 조종사에 대한 이야기이다. 처음에 아래와 위를 이루는 두 대의 로봇의 결합으로 시작된 변신합체 로봇은 외계종족과의 전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계속 그 합체 로봇의 숫자를 늘려가다 결국 52만 대짜리 합체로봇인 리바이어던을 만들게 되는데...


「마리오의 침대」.

론다라는 산골 도시에 살았던 마리오와 마리아 로사라는 두 친구의 사랑 이야기이다. 어린시절부터 친구였던 둘은 결국 결혼에 골인하지만 마리오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특이한 마리아 로사의 잠버릇이 문제로 대두된다. 계속해서 잠을 설치던 마리오는 결국 마리아 로사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커다란 침대를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다. 그래서 결국 마리오는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우주정거장에 자신들의 침실을 만들고 반지 모양의 커다른 침대를 만들게 된다는, 정말 눈물 겨운 사랑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배명훈 / 안녕, 인공존재! / 북하우스 / 328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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