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다 슈이치 《도시여행자》

진행 중인 통증과 덧붙여진 통증의 차이, 완성된 것과 미완인 것의 사이.

by 우주에부는바람

「나날의 봄」.

“누군가를 천천히 좋아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을 천천히 인정할 수는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천천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역시 불가능한 것 같다.” 일본 작가들의 장점 중 하나는 뭔가 모호한 문장을 적어 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그들의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그러한 문장에 주억거리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사소설 경향이 가지는 심리적인 섬세함이라는 장기는 그런 면에서 발동한다. 소설은 신입사원 다테노와 그의 여자 선배인 이마이씨 사이의 뭔가 아련하게 이제 시작되는 듯한 감정을 그리고 있다. 물론 짧은 단편이다보니 더 이상의 진전은 없지만 딱 거기서 멈추어도 뭔가 그 이후를 알 것 같은 기분이다. 해피엔딩이라고도 해피엔딩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을 그 시간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심정...


「영하 5도」.

“소설 제목만 생각나면, 그때 문득 떠올린 생각이 뭔지 알아낼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제일 중요한 그것이 기억나지 않는 지금으로서는 뭘 떠올리지 못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뭘 떠올리지 못하는지를 떠올릴 수 없다…….” 어슴푸레한 기억들이 등장하는 소품이다. 이야기의 배경으로 한국 여행이 등장하는데, 그곳이 마치 내 사무실 주변을 닮아 있다. 종종 사무실로 가득한 이곳 비즈니스 모텔에 묵는 일본인들과 마주치곤 하는데, 이제 그들과 마주칠 때 난 이런 생각을 하게 될지 모른다. 아, 맞아, 어떤 일본 소설가의 소설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뭐였더라...


「태풍, 그 후」.

“반쯤 물에 잠긴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되살아났다.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괴로움과,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강제로 해야 하는 괴로움은 과연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 어떤 쓸쓸함이 강하게 떠오른다. ‘하고 싶지 않은 말을 강제로 해야 하는 괴로움’쯤은 ‘하고 싶은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상황에 따라 모두 다르게 느끼기는 할 것이다. 인간의 이 이기적인 본성은 바이러스와 같아서, 침투와 후퇴를 우리는 눈으로 확인할 방도가 없다.


「새벽 2시의 남자」.

“... 처음부터 그곳에 아무도 살지 않은 것처럼 벽 너머는 쥐 죽은 듯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남자 친구와의 짧은 헤어짐, 그 사이에 자신이 묵었던 좁은 아파트, 그 바로 옆 방에 기거하였던 어린 남자, 그 남자의 틈입이라고 여겼던 그 날 새벽 2시의 경험은 실재하는 것이기는 할까...


「젖니」.

“... 창이 열렸다. 곧이어 류세이가 그 안에서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그러나 그대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내달릴 기색도 없이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흔들흔들 몸을 흔들었다.” 서둘러 앞으로 달려나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답답하기 그지없다. 관계 어색한 여자의 집에 얹혀 살면서 비슷한 처지의 인간과 서로에게 폭행이나 가하는 어줍잖은 쇼를 해야 하는 고야의 일상이 참 팍팍하다.


「녀석들」.

“... 난폭하게 입이 틀어막히고, 등을 무릎으로 찍히고, 두 손 두 발을 꺾이면서도 엉덩이를 주물렸을 때보다는 머릿속이 맑았다. 적어도 지금 자신이 자기가 아는 세계에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동성에게 당한 치한의 경험, 어떤 경험은 두고두고 자신을 괴롭히기도 한다. 그 경험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위해서는 어쩌면 같은 경험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첫 번째 경험에서 자신이 행하지 못했던 피드백을 통해서 말이다.


「오사카 호노카」.

“요즘 세상에는 결혼 안 한 남자가 별로 신기할 것도 없다. 다만 결혼하지 않은 ‘남자’이기 때문에 용서받는 것이지, ‘남자’가 아니게 된 순간 눈길도 못 받는 존재가 된다...” 중년이 되어 만난 두 친구, 그리고 여기에 새롭게 끼어드는 또 다른 친구 한 명의 이야기인데 위의 문장에 묘하게 꽂히게 된다. ‘나자가 아니게 된 순간’ 아무런 눈길도 받지 못하게 된다는 저런 말에 마음의 일렁임을 경험하게 될 줄이야...


「24 Pieces」.

“당신과 그의 우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그녀는 그런 바보 같은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런 여자이기 때문에 언제가지고 떨쳐낼 수가 없다.” 스물 네 개의 조각 그러니까 단락으로 이루어진 짧은 소설이다. 친한 친구의 애인과 보냈던 하룻밤의 기억이 조각조각 파편화되어 소설에 박혀 있다.


「등대」.

“... 이 시간, 세상 속을 걷고 있는 사람이 하나뿐인 것처럼 느껴졌다. 만일 어딘가에서 누구가가 걷고 있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좋으니 만나고 싶었다.” 뭔가 이미지 혹은 기억들로 가득한 짧은 소설이다. 뭔가로 가득해야 하는 공간이지만, 그래서 비어 있음이 더욱 텅 빈 것으로 느껴지는 그러한 공간을 향하여 비추고 싶은 등대를 마음에 품고 있는 것과 같은...


「캔슬된 거리의 안내」.

“내가 쓰는 소설은 지어낸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깃코는 역 반대편에 살고, 반년 전에 헤어진 후로도 주말이면 뻔뻔스럽게 그 집으로 놀러갔다. 소설에 쓴 내용은 모두 사실이다. 다만 이 소설에는 쓰지 않은 일이 더 많다... 그렇다면 쓰인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완전하지 않다. 모든 순간을 빠짐없이 쓰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거짓인 셈이다...” 다른 소설들이 엽편에 가까운 단편 소설이라면 이번 소설은 조금 길다 싶은 단편 소설이다. (원제는 바로 이 단편 소설의 제목을 따르고 있기도 하다) 액자 소설의 형식인데, 그것이 위의 실토처럼 액자 바깥 주인공의 실제를 따르고 있다고 하니 액자 소설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한 여자는 또다른 남자를 좋아하고 있는데, 이 남자, 그러니까 소설의 주인공인 남자는 그 여자의 집을 방문한다. 그 남자와의 연애에 참견을 하고 싶어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 여자가 그 남자를 찾아 집을 비운 사이에 이 여자의 엄마와 밥도 해먹고 이야기도 하고 술도 마신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이 남자 집에는 그 남자의 형이 부지불식간에 들어와 있다. 무위도식의 전형인 형이 집에 와 있는 동안 이 남자는 오래전 군함도라고 불리우던 자신의 고향 앞의 인공섬을 떠올린다. 액자 소설 속의 설정도 기억에 남지만 이 군함도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지상 최고의 인구밀도를 자랑하였지만 이제는 사람의 발길이 들어서서는 안 되는 폐허로만 남은 그곳, 그곳을 가이드하던 어린 소년의 안내를, 지금, 받아보고 싶은 심정이 된다고나 할까.


소설집은 요시다 슈이치가 지난 십여년간을 정리하면서 자신의 단편 소설들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내가 이런 식의 기획 편집된 소설집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그다지 만족스러운 소설들은 아니었다. 다만 인후염의 증상은 그대로인 채로 여기에 코감기와 목감기 증상이 겹치게 되었는데, 이러한 몸 상태가 좀더 후한 기분으로 소설을 읽게 만들도록 만들었다. 완성된 것이라고 봐야 할지 미완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소설들이 불쑥 뭔가를 쓰고 싶게 만들었으니, 그 또한 수확이라면 수확일테고...



요시다 슈이치 / 이영미 역 / 도시여행자 (キヤンセルされた街の案內) / 노블마인 / 261쪽 / 201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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