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열두 살 소년의 희로애락...
나오키상 수상작이다. (참고로 나오키상은 일년에 두 번 수상작을 뽑는다) 아쿠타가와 상이 순수문학 (마땅히 대체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 주류문학? 순문학? ) 계열의 작품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나오키상은 대중성에 입각하여 선정을 한다고 하는데, 최근 들어서는 그 구분이 모호하다고 한다. 애써 순수문학으로 자신의 문학을 치장하려는 것은 우리 문단의 애늙은이 같은 습성일 터이고, 실제로 세계 문학의 흐름은 그와는 무관할 것이니...
“뭐든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열두 살짜리 아이의 눈에, 방금 전에 비친 광경은 깊이깊이 새겨졌으며, 단단한 막대기 끝으로 꽉 누르고 있는 듯한 답답함이 신이치의 가슴에 남았다.”
소설은 그야말로 세상살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열두 살 신이치의 이야기이다. 대도시에 살다가 시골로 내려온 이 열두 살짜리 남자 아이가 아버지를 잃고, 친구를 사귀고, 할아버지 그리고 엄마와 함께 살면서 겪는 딱 열두 살짜리의 희로애락을 그리고 있다. 물론 그 희로애락이라는 것이 그저 열두 살짜리의 이야기로 머물지는 않는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에서 모두 배웠다, 라고 하지 않는가. 열두 살짜리의 인생도 나름 풍부하고 복잡하고 섬세하고 예민한 것이다.
“... 영어로 암은 ‘캔서(cancer)’ 가고 하는데, 별자리에 게자리를 말하는 ‘캔서’와 철자가 똑같다. 그것은 인체를 좀먹는 암 조직이 게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암으로 죽은 아버지, 그리고 사고로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 전학생에게 다정하지 못한 급우들 속에서도 신이치는 비슷한 처지의 전학생 하루야와 우정을 키운다. 둘은 바닷가에서 소라게를 잡아 산 위의 바위 근처 웅덩이에서 키우며 방고 후의 시간을 같이 보낸다. 둘은 그 소라게에게 소원을 빌면서 자신들의 고달픈 열두 살 인생을 도닥이고, 서로를 향해 신뢰도 키워간다.
“셋이서 눈을 감고 손을 모아도 예전처럼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았다. 지금 눈을 뜨면 하루야와 나루미가 몰래 서로 웃고 있지는 않을까. 그런 기분이 들어견딜 수가 없었다... 신이치는 자신의 감정에 자신이 생매장당한 듯한 숨막힘을 견뎠다.”
하지만 그러한 둘 사이에 같은 반 친구인 여자애 나루미가 끼어들면서 둘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여기에 할아버지가 몰던 배가 사고를 당할 때 나루미의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현재 (암으로 남편을 잃은) 신이치의 엄마와 (사고로 아내를 잃은) 나루미의 아빠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이 겹쳐지면서 우정과 사랑과 질투와 배신 등등의 감정들이 이 열두 살 아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이 혼란스러운 아이를 향해 신이치의 할아버지는 “신이치, 뱃속에다가 너무 묘한 걸 기르지 말거라.”와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한다. 사춘기 이전의 소년, 아직 스스로 규정할 수 없는 많은 감정들의 어슴푸레한 느낌들이 소설 전편에 가득하다. 물론 뭔가 너무 딱딱 맞아떨어져서 작위적이기까지 한 형식은 그야말로 일본스럽다고 해야 할까. 소년의 어슴푸레한 감정이 너무 뻔한 복선들로 분명해지니 그것이 오히려 소설의 읽는 맛을 떨어뜨린다는 느낌이다.
미치오 슈스케 / 김은모 역 / 달과 게 (月と蟹) / 북폴리오 / 412쪽 / 2011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