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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Sep 20. 2024

로버트 로드리게즈, 에단 마니퀴스 감독 <마셰티>

'대놓고 B급 무비'가 보여주는 킬링 타임용 막장 액션의 럭셔리한 진수.

  취향이 딱히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어서 허술한 영화를 (주성치의 영화를 사정없이 좋아한다. 허술하면서도 동시에 옹기종기 완벽하게 개구진...) 좋아함과 동시에 극강의 하드고어 영화들이나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아마도 <세르비안 필름>의 역겨운 충격이 단연 최고다, 물론 모든 영화들을 대상으로 한다면 <네크로맨틱>를 으뜸으로 뽑아야 하겠지만) 창조적으로 폭력적인 영화들까지 (미이케 다카시의 <이치 더 킬러>나 비트 다케시의 야쿠샤 영화 혹은 김기덕 영화의 몇몇 장면들을 포함하여) 그리 거부감 없이 낄낄거리며 볼 수 있는 축에 속한다. 그러니 타란티노 제작에 로드리게즈 감독의 이 정신 나간 B급 무비를 (위에서 말한 요소들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비주류의 세상에서는 너무 점잖게 죽인다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주류의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정신 나간 놈으로 치부될 터이다) 놓칠 수는 없다. 


  게다가 이 영화의 탄생 배경도 코믹하기 그지없다. 21세기판 익스플로이테이션 무비를 표방하며 (익스플로이테이션 무비는 마약, 폭력, 섹스 등을 소재로 한 저예산 선정주의 상업영화로 6,70년대 미국에서 득세했다. 이런 익스플로이테이션 무비들은 드라이브인 극장에서 많이 상영되었고 주로 비슷한 영화들을 두 편 동시 상영하였다.)  타란티노와 로드리게즈 등이 연출한 <그라인드 하우스>에 (타란티노는 익스플로이테이션의 전통을 따르고자 <데쓰 프루프>와 <플래닛 테러>라는 두 편을 동시에 상영하는 한 편의 영화로 만들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이 두 개의 영화가 별개로 상영되었다. 겁나게 긴 시차까지 두고서) 말도 안 되는 예고편으로 등장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열혈팬들과 이 예고편 영화의 주연으로 등장한 배우 대니 트레조는 <마셰티>라는 실제 영화를 만들어달라고 끊임없이 주문했고, 결국 로드리게즈가 총대를 맨 것이다.



  그렇게 대놓고 B급 무비를 표방한, 그러면서도 초호화 캐스팅에 빛나는 영화 한 편이 탄생했다. 멕시코에 맞닿은 곳에서 상원의원에 재선되기 위해 악당들과 손을 잡는 로버트 드니로, 멀쩡한 듯 아닌 듯 어설픈 이민국 수사관을 연기하는 제시카 알바, 상원의원의 보좌관인 아버지를 둔 나사 빠진 딸 역의 린제이 로한에 멕시코 이민자들을 돕는 네트워크의 수장인 여전사 미쉘 로드리게즈, 여기에 B급 액션의 뻣뻣한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스티븐 시걸로 (이에 버금가는 배우로는 장 클로드 반담, 혹은 약간 윗세대로 척 노리스 정도가 있겠다) 채워진 배우 구성이니 만만치 않다.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스토리는 이렇다. 연방수사관 토레스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죽음의 위기에서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어떻게 살아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제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 근처에서 일당 노동자로 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레스는 살인을 청부받게 되고, 이를 실행에 옮기려고 하는 순간 함정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제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자들을 향하여 차례로 복수를 하게 된다.



  사실 이러한 줄거리 보다는 군데군데 등장하는 장면들이 임펙트가 있다. 병원에서 탈주하는 액션 과정에서 토레스가 들이닥친 악당의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서는 그것을 밧줄 삼아 건물에서 뛰어내린다거나 극우성향의 국경수비 민병대원인 자가 누군가가 총에 맞는 장면을 볼 때마다 구토를 한다거나 마지막 액션 신에서 간호사가 기관총을 갈겨 댄다거나 수녀복을 입은 린제이 로한을 확인할 수 있는 장면들이 그렇다. 이에 비한다면 린제이 로한과 그녀의 엄마와 토레스로 이루어진 쓰리썸 장면이나 한껏 부풀려진 린제이 로한의 전라 장면 등은 입맛만 다시게 될 뿐이니 크게 기대할 것이 없다.


  여하튼 킬링타임용 주류 B급 막장 무비라는 설정에 이보다 더 충실할 수는 없다.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몇몇 장면들과 함께 진행되는 스피디한 전개에 싼티가 절절 흐르는 음악과 음향까지 여러 가지 도발적인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영화 꽤나 본다는 사람이라면 어딘가에서 한 번은 봤음직한 대니 트레조, 그는 실제로 마약과 무장강도 등의 범죄로 11년 동안 감옥을 들락거린 끝에 갱생 프로그램을 거쳐 악역 배우로 거듭났고 네이버 영화 정보에 따르면 97편의 영화에 주로 조연과 단역으로 출연하였는데, 그의 무시무시한 폭력 포스에도 불구하고 등장하는 일급 여배우들마다 한 순간에 그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 또한 코믹하기 그지 없으니 이 B급 짬뽕 무비에게 죽임당한 시간이 아까울리 없다.



마셰티 (Machete) / 로버트 로드리게즈, 에단 마니퀴스 감독 / 대니 트레조, 로버트 드니로, 제시카 알바, 스티븐 시걸, 미쉘 로드리게즈 출연 / 104분 / 201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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