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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아메리고》

콜럼버스와 아메리고 베스푸치, 최초의 발견자와 최초의 인식자의 사이...

by 우주에부는바람

슈테판 츠바이크 사후 출간된 유고작이다. 현재 아메리카라는 명칭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피렌체 출신의 여행가라고 할 수 있는 아메리고 베스푸치, 그의 인생역정 아니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오류와 오해의 역사를 살피고 있는 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인 콜롬부스 대신 어째서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인물의 이름이 대륙의 이름으로 자리를 잡았는가에 대한 보고서라고 할 수 있으니, 기존의 슈테판 츠바이크의 전기물과는 사뭇 다르다.

(어쩌면 그가 죽기 전에 작품을 썼다면 지금의 형태는 아니리라. 아마도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대한 전기를 쓰기 위하여 모아 놓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자료가 조금 날 것의 형태로 묶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그는 인류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묻혀 있던 그리움을 건드렸으며, 도덕과 돈과 법 그리고 소유로부터의 자유에 대한 꿈을, 그리고 누구나의 마음속에서 마치 지난날의 낙원에 대한 흐릿한 기억처럼 신비스럽게 어렴풋이 떠오르는, 수고와 책임이 따르지 않는 삶을 향한 채울 수 없는 열망을 건드린 것이다.”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연대기 순으로 적어 놓은 책에 따르면 가장 먼저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1503년 <신세계 Mundus Novus>라는 제목의 4쪽 짜리 전단지를 통해서이다. 바야흐로 전세계를 향한 항해가 시작되고 인도나 중국이라는 신대륙들을 향한 호기심으로 가득하였던 당시 사람들은 신세계라는 명칭 하나만으로도 설렘이 가득하여 베스푸치의 이 4쪽짜리 전단진에 흠뻑 빠진 것이다.

“그 대륙을 아메리쿠스가 발견했으므로 오늘부터는 그 땅을 아메리쿠스의 땅 또는 암리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 발트제뮐러의 <지리학 입문> 중

그리고 다음 해인 1504년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네 번에 걸친 여행에서 발견한 섬들에 대한 편지>라는 16쪽짜리 책자를 통하여 더욱 확실하게 아메리고 베스푸치라는 이름은 대중들에게 각인된다. (물론 이 책자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에 의해 작성된 것인지는 모호하지만...) 그리고 마지막 결정타는 1507년 발트제뮐러에 의해 발간된 52쪽짜리 <지리학 입문>이라는 책자를 통해서이다. 발트제뮐러는 그 책자를 통해서 드디어 인류 역사 최초로 아메리카를 아메리카라고 부르자고 이야기한 것이다.

“... 우리는 왜 하필이면 발트제뮐러가 자기 손으로 직접 신대륙에 붙였던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다시 떼어버리려 했는지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수정을 가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진실이 전설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경우는 매우 드문 법이다. 말이라는 것은 일단 세상을 향해 내뱉어지면 이 세상에서 힘을 얻어, 그 말에 생명을 부여한 사람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유롭게 그리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게 대중들이 아메리고의 이름에서 연유한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신대륙을 명명한 뒤에도 (당시 지식인 계층이 쓰는 라틴어에 따르면 아메리고는 아메리쿠스라고 쓸 수 있다. 그리고 당시에 발견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가 모두 여성형이기 때문에 이 신대륙에 대해서는 아메리쿠스의 남성형인 아메리카를 그 이름으로 하였다)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심지어 아메리고를 아메리카의 어원으로 삼은 책자의 제작자인 발트제뮐러조차 이후 알 수 없는 이유로 <지리학 입문> 제작 이후 1513년 자신이 만든 지도에는 아메리카 대신 Terra Incognita 미지의 땅, 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하지만 17세기를 거치면서 마치 콜럼버스의 업적을 빼앗기 위해 거짓 자료를 만들고 배포함으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뻔뻔한 (게다가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번복도 불가능한) 사기꾼, 위조자, 중상모략가로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위치는 전락한다. 물론 이러한 베스푸치는 다시 한 번 피렌체의 동향 사람들에 의해서 복권의 노력의 대상이 되지만, 그의 이름으로 배포된 책자의 내용에 대한 신빙성이 온전히 해결되지는 않았다.

“...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반면 베스푸치는 아메리카를 발견하지 않았지만 가장 먼저 그것을 아메리카로, 새로운 대륙으로 인식했다. 이 한 가지 공적이 그의 삶과 그의 이름에 붙어다니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행동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행동에 대한 인식과 그 행동의 영향이기 때문이다. 어느 행동에 대해 설명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후세의 사람들에게는 그 행동을 한 사람보다 대체로 더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슈테판 츠바이크의 생각에 따르면 베스푸치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자료들이 베스푸치 자신의 고의에 의해 작성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역사적 오류들에 의하여 부여받은 아메리카라는 이름에 이제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며, 오히려 이 신대륙의 이름에 어느 이름 모를 평범한 항해가의 이름이 붙여진 것이 더욱 어울린다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짐작할 수 없었던 이야기 하나를 보태자면 당시대 사람인 콜럼버스와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서로를 잘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다른 사람들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를 의심하는 순간에도 콜롬부스는 아메리코 베스푸치의 정직성을 추켜세웠다고 하니 이 역사적 아이러니, 그러니까 최초의 발견자 (콜럼버스는 자신이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알았지만)와 최초의 인식자 (아메리고 베스푸치는 자신이 발견한 그곳이 문두스 노부스, 신대륙임을 깨달았다) 사이의 간극과는 상관없이 진행된 인간관계가 신기할 따름이다.



슈테판 츠바이크 / 김재혁 역 / 아메리고 (Amerigo : Die Geschichte eines historischen Irrtums) / 삼우반 / 191쪽 / 200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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