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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기리노 나쓰오 《아웃》

기분 나쁜 악몽을 꾸는 듯 높아지는 심박수를 견디며...

  악몽의 유형 중 (인과 관계가 크지 않은 이유로 혹은 무슨 이유인지 꿈 안에서는 인지하지도 못한 채) 살인을 저지르고 쫓기는 상황은 꽤나 대표적일 것일 게다. 우리 모두의 내부에 그런 극단적이지만 일말의 충동이 존재하는 탓일 수도 있다. 엊그제도 그런 기분 나쁜 꿈을 꾸었다. 예전에는 꿈에서 깨고 나면 아 꿈이었어, 안도하였지만 요즘은 도대체 왜 이런 꿈을, 깨고 나서도 한참 동안은 입맛이 쓰다.


  “... 살아 있는 인간도 시체도 마찬가지라는 요시에의 말을 떠올리고 마사코는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시체는 역겹게 느껴져도 움직이지 않는다. 살아 있는 가즈오는 자신에게 영향을 준자. 살아간다는 것이 훨씬 음울하다.” (1권, p.182)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을 읽는 내내 기분 나쁜 악몽을 꾸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우리와 별다를 것 없는 생활인이었던 야요이는 얼마 전 자신을 구타하였던 남편을 목 졸라 살해한다. 그리고는 직장 동료인 마사코에게 연락을 하고, 마사코는 사체 유기를 돕기로 하면서 또다른 동료인 요시에를 부른다. 마사코의 집에서 사체를 토막내는 동안 직장 동료 구니코가 찾아오고, 구니코 또한 이 작업에 합세한다.


  “속으로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너무 괴롭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프라이드가 가혹한 노동을 견디게 해 준다. 그녀는 모든 문제의 본질을 덮어 두고 마음속 깊은 곳에 걸어 잠근 채, 부지런함을 철칙으로 삼았다. 현실을 보지 않는 것이 삶의 기술이다.” (1권, p.46)


  소설의 제목이 ‘아웃’인데 일종의 비주류, 로 읽힌다. 소설은 남자가 아닌 여자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고, 이들은 낮에 일하지 않고 밤에 일한다. 물론 단순 노동이며 벌이도 시원찮고, 노동의 공간은 도심에서 벗어나 있다. 요시에는 죽은 남편을 대신해 시어머니의 똥오줌을 받고 있고, 구니코의 남편은 집을 떠났다. 마사코의 남편은 같은 집에 살지만 자신만의 방에서 살고, 야요이는 남편을 죽였다. 이들의 현재는 비슷비슷하게 비루하다. 


  “구타 사건이 일어난 것은 거품경제 절정기였다. 모든 신용금고가 열에 들뜬 것처럼 융자로 쏠려 고객만 왔다 하면 제대로 심사도 하지 않고 돈을 빌려 주던 시기다. 마사코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손님에게까지 빌려 주더니, 거품이 부서지자 그것은 불량 채권의 산이 되었다. 지가가 바닥을 기어 담보 가치가 떨어지고 경매 매물만 늘어 갔다. 그러나 경매 자체가 쫓아가지 못해 불량 채권을 회수하지 못했다.” (1권, pp.279~280)


  소설이 출간되었고 다루고 있는 시간적 배경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한복판에 있다는 점도 무시하지 못할 바다. 거품경제가 순식간에 사그라든 다음 그들은 모두 어느 정도씩 미쳐 있었다, 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작가가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그 한복판을 살아가고 있는 일본의 독자들은 충분히 느꼈으리라. 그쪽을 대변하는 인물로는 소설 속의 구니코를 떠올릴 수 있겠다. 


  “... 지난번에는 잘됐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 바보 같은 짓에 머리를 디밀어 넣고 말았다는 후회와, 어딘가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 같은 커다란 불안의 그림자가 아무리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현관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자니 갈팡질팡하는 기분이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 망설임에 떠밀려 끝내 마사코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2권, pp.182~183)


  소설은 1권과 2권을 합하여 야근, 욕실, 까마귀, 검은 환상, 보수, 412호실, 출구라는 일곱 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대충 적어 놓은 것 같지만 이 챕터 제목들은 너무나 직관적으로 소설을 가리키고 있다. 읽고 나면 충분히 그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간혹 노골적인 묘사들이 등장하는데 오랜만에 그런 묘사와 맞닥뜨렸더니 그만 심장이 두근거렸다.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의 심박수를 닮아 있었다.



기리노 나쓰오 桐野 夏生 / 김수현 역 / 아웃 OUT / 황금가지 / 전2권 (1권 421쪽, 2권 319쪽) / 2007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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