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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에이모 토울스 《링컨 하이웨이》

어찌 보면 시작되어야 할 이야기는 시작되어보지도 못했는데...

  《링컨 하이웨이》는 에이모 토울스의 세 번째 소설이다. 주말 내내 두꺼운 소설책을 끌어안고 뒹굴거리고 있었더니 아내가 뭔 책이냐고 물었다. 내가 읽는 책에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는 아내를 향해 침을 튀겨가며 책 선전(혹은 작가에 대한 선전)을 했다. 한참 동안 그래? 하면서 내 말을 듣던 아내는 그렇다면, 하면서 작가의 직전 작품인 《모스크바의 신사》를 이북으로 구매했다고 내게 알렸다. 


  “...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고, 다른 사람은 여러분에게 나쁜 짓을 할 거예요. 그리고 서로에게 하는 이 나쁜 짓은 여러분의 사슬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한 나쁜 짓은 죄의 형태로 여러분을 얽어매고,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한 나쁜 짓은 분노의 형태로 여러분을 얽어맬 거예요. 우리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 두 가지 얽매임으로부터 여러분을 해방하기 위해 있는 겁니다. 속죄를 통해 여러분을 죄에서 풀어주고, 용서를 통해 여러분을 분노에서 풀어주기 위해서 말이에요. 여러분은 이 두 가지 사슬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후에야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한 걸음 한 걸음 평온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pp.136~137)


  소설은 이제 막 소년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에밋 그리고 열 살 터울인 에밋의 동생 빌리의 여행담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는 오래 전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암으로 돌아가셨으며 집까지 은행에 넘어가 그야말로 집도 절도 없게 된 이 두 형제는 이제, 에밋의 자동차를 타고 엄마를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기로 한다. 하지만 에밋과 빌리가 집을 떠나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더치스와 울리가 나타나며 이야기의 여정은 새로운 국면을 향하게 된댜.


  “호메로스는 그의 이야기를 인 메디아스 레스in medias res로 시작했어. 이 말은 중간에서라는 뜻이야. 그는 9년째로 접어든 전쟁에서 우리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자신의 천막에서 분노를 삭이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어. 그 이후로 수많은 위대한 모험 이야기가 이런 방식으로 쓰여왔대... 형, 나는 우리가 우리의 모험을 하고 있다고 확신해. 하지만 그 중간이 어디인지 알기 전까지는 그걸 적을 수가 없어.” (p.233)


  더치스와 울리는 에밋의 소년원 동기로 두 사람은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함께 무단으로 소년원을 이탈한 상태이다. 에밋은 대륙의 서쪽으로 향한 자신들의 여정의 시작 부분에서 두 사람을 위해 잠시 수녀원에 들르게 되는데, 그만 더치스가 에밋의 차를 타고 뉴욕으로 떠나면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만다. 결국 에밋은 빌리와 함께 화물열차에 무단 탑승하여 뉴욕을 향하고, 거기에서 율리시스를 만나게 된다.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가 요람과 소풍용 가방을 집 안으로 옮길 때 어머니는 에밋의 손을 잡고 위층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침대에 눕힌 후 이불을 꼭 덮어주고 이마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런 다음 빌리에게도 그렇게 해주려고 방을 나가 복도를 걸어 내려갔다.

  그날 밤 에밋은 그 어떤 날보다도 더 달콤하게 푹 잤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어머니는 사라지고 없었다.” (p.255)


  잘게 잘린 챕터로 이루어진 소설의 두 기둥은 에밋과 더치스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챕터에서 ’나‘라는 1인칭으로 등장한다. 소설에서 ’나‘라는 1인칭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에밋의 이웃집 처녀인 샐리 뿐이다.) 이지만 이들의 여정에는 율리시스를 비롯해 존 목사, 빌리가 스물 다섯 번을 읽은 모험 개요서의 저자인 애버커스 애버네이스 교수, 울리의 누이인 세라, 에밋과 더치스의 소년원 동기인 타운하우스 등이 등장한다.


  “우린 젊을 때 우리의 악과 분노, 시기심, 자존심을 억누르는 것의 중요성을 우리 자신에게 가르치는 데 아주 많은 시간을 소비하지.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보기엔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이 결국 생각과 달리 미덕에 의해 저해되는 것 같아. 만약 어느 모로 보나 장점인 특성을 받아들여서―그러니까 목사와 사인이 칭송하는 특성, 우리 친구들에게서 발견하고 존경하게 되는 특성, 우리 자녀에게 길러주고 싶은 특성을 받아들여서―그 특성을 어느 가엾은 영혼에게 풍성하게 준다면, 그것은 거의 틀림없이 그 사람의 행복에 장애가 될 거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 영리하게 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이익을 너무 참고 인내하는 사람도 있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너무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고.” (p.698)


  최초의 미국 횡단 도로인 링컨 하이웨이의 중간 즈음에 위치한 네브래스카에서 도로의 서쪽 끝인 캘리포니아로 뻗어가야 할 여정은 오히려 도로의 동쪽인 뉴욕에서 끝이 난다. 어찌 보면 시작되어야 할 이야기는 시작되어보지도 못한 셈이다. 그래서 이야기가 앙상해졌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이야기가 이렇게 두툼해도 되나 싶은 마음이다. 《링컨 하이웨이》는 팔백 페이지 짜리 소설이다, 쏜살같은... 



에이모 토울스 Amor Towles / 서창렬 역 / 링컨 하이웨이 (THE LINCOLN HIGHWAY) / 현대문학 / 816쪽 / 202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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