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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제임스 설터 《고독한 얼굴》

홀로 저만의 길로 오르려고 하였고, 그러다 결국 홀연히...

  넷플릭스에 산악 다큐멘터리가 등장하면 빠져들어 보곤 한다. <던 월 (The Dawn Wall, 2017)>과 <14좌 정복 – 불가능은 없다 (14 Peaks: Nothing is Impossible, 2021)>를 예전에, 최근에는 <알피니스트:마크-앙드레 르클렉(The Alpinist, 2002)>을 보았다. 캐나다 출신으로 솔로 (주로 혼자서) 알파인 (자급자족형) 스타일의 등반가인 마크-앙드렉 르클렉을 2년 여 동안 따라다니며 찍은 다큐멘터리이다. 


  “건물의 셔터는 여전히 내려가 있고, 금세기를 지난 세기와 구별해주는 것은 배수로를 따라 늘어선 빈 차들뿐인 이른 시간의 고요 속에서 랜드는 굽이진 새벽 거리를 걸었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로프를 든 모습이었다. 주변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는 여자 한 명과 뜨락에서 뭔가를 사냥하는 꼬리 없는 흰 고양이 한 마리가 전부였다. 그가 가까이 다가가자 고양이는 덤불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보니 꼬리가 있었다. 거의 안 보일 정도로 완벽하게 검은 꼬리였다.” (p.66)


  소설 《고독한 얼굴》에 등장하는 등반 장면을 읽으면서 다큐 <알피니스트>에 등장하는 르클렉이 산에 오르는 장면을 자주 떠올렸다. 1979년에 씌인 소설 속 랜드의 등반 행위는 2000년대에 활동한 젊은 산악인 르클렉의 그것과 많은 부분 겹친다. 둘은 모두 최소한의 도움만으로, 되도록 홀로 산을 오르기를 원했고 다른 이들이 택한 등로가 아닌 자신들만의 등로를 원했다.


  “...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할 것인지 같은 일들이 설명되기를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되면 뭔가가 사라져버리기 때문이었다. 그가 많은 대가를 치르고 얻으려 한 지극히 가치 있는 단 한 가지는 방해받지 않고 혼자 나아가는 것이었다.” (p.121)


  소설 《고독한 얼굴》의 주인공인 버넌 랜드는 스물대여섯 살의 젊은 암벽 등반가이다. (작가는 1993년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소설의 주인공은 1960년대에 활동한 유명 산악인인 게리 헤밍을 모델로 했다고 밝혔다.) 소설의 시작은 교회 지붕에 매달려 일을 하는 장면이었지만 랜드는 곧 친구 캐벗의 권유에 따라 프랑스 샤모니를 향한다. 알프스에 접한 마을인 샤모니에는 많은 나라의 등반가들이 집결하는 장소이다.


  “그는 일찍 출발했다. 암벽은 하강하는 거대한 강물 같았다. 오르는 내내 가팔랐다. 암벽의 숨결은 차가웠다. 정적 속에서 크램폰 소리가 빠드득거렸다. 그는 양손에 피켈을 쥐고 체계적으로 올랐다. 그 리듬에 빠져들었다. 높이 올라왔을 때에야 미끄러져 떨어지는―떨어진다면 마치 빙벽이 유리인 것처럼 경사면을 타고 쏜살같이 떨어져 내릴 것이다―모습이 처음으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묘한 감정이 일었다. 그는 잠시 등반을 멈추고 쉬었다. 크램폰 스파이크는 일부만, 겨우 반 인치 정도만 빙면을 파고들었는데, 그 반 인치가 실패하는 일 없이 미끄럼을 방지해줄 터였다. 그걸 깨닫자 일종의 희열이 밀려들었다. 그가 아는 어떤 느낌과도 다른 안전감이었다. 마치 산이 그에게 거룩한 직분을 수여한 것만 같았다. 그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pp.172~173)


  그곳에서 랜드는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기를 꺼리는 벽면을 선택하여, 죽음의 위기에 처한 동료와 함께 정상에 올라, 곧 유명 인사가 된다. 하지만 랜드는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다. 그는 그 관심으로부터 멀어지고자 대도시인 파리로 향한다. 산 아래에서 그리고 대도시에서 랜드는 여러 여자들을 만나지만 안착하지 못한다. 그는 떠나는 것으로 그의 삶을, 그녀들은 남아서 그녀들의 삶을 산다. 


  “그들은 대브니 부인이 키우는 아라우카리아의 연녹색 잎들이 마치 바다 밑에서 움직이듯이 꿈결처럼 하느작거리던 아침 녘까지 이야기했다. 때때로 언쟁을 벌이느라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대체로 마음을 털어놓으며 조용히 얘기했다. 둘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심이 있었다. 그것은 생명의 근원에 뿌리를 둔 이해심이었다. 그들에게는 언제까지나 뇌리에서 떠나지 않을―가슴이 터질 듯한 엄청난 노력, 정상에서 황홀한 희열을 느끼며 서로의 손을 흔들었던 일, 환하게 빛나던 얼굴, 각자의 존재를 확인한―날들이 있었다.” (p.254)


  조난 당한 산악인을 구조하기도 한 랜드이지만 등반 동료인 브레이의 사망, 그리고 캐벗의 심각한 부상이라는 소식 앞에서 그만 무너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캐벗을 방문한 랜드는 캐벗을 어떻게든 일으켜 세우려 하지만 그것을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랜드는 그들로부터 그리고 산으로부터 사라지는 쪽을 택한다. ’이미 살아보았던 어떤 삶도 다시 살고 싶지 않았‘고, ’그 모든 것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랜드는 그저 먼 곳에 있다. 



제임스 설터 James Salter / 서창렬 역 / 고독한 얼굴 (Solo Faces) / 마음산책 / 287쪽 / 2022 (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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