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철 《분신들》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최수철 식의 사유를 각오하고서...

by 우주에부는바람

*1999년 6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토카타와 푸가」.

나, 한명주, 가현수, 이현경이 등장하는 중편 소설... 각오야 하고 있었지만 역시나 난해... 현실적인 듯, 또는 현실적이지 않은 듯 경계를 넘나드는... 손가락에 조금만 세게 힘을 주어도 그 긴장의 파동으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한낱 나비처럼 너울거리는 문체의 숨은 정신은 재미있지만, 그것이 나비 효과처럼 폭발적인 것은 아니어서 오래도록 또는 멀리까지 제 파장을 보내지는 못하는 아쉬운 생략... 자아를 향한 자아의 틈입에 끈질기게 저하하는 자신을 향해 보내는 일종의 문학적 경고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어둠의 후광」.

상대방의 아우라를 볼 수 있게 된 남자. 그 남자의 아우라를 확인하는 여자. 그 여자의 눈에 비친 자신의 아우라를 볼 수 있게 된 그 남자의 이야기. 곰곰히 몰입하고 있으면 무언가 읽히다가도, 어느 순간 잠시 상념이라도 스치면 눈 앞의 문자는 문자가 아닌 어느 무언의 기호로 바뀌고 만다. 작가는 어쩌면 지금의 나와 같은 상태, 문자든 사람이든 그 대상의 아우라 또는 실체를 일순간 잃었다가 다시 찾는 상황을 그려 보이려 한 것일까...


「영혼의 피」.

자칭 신인 자가 거두어 들여야 하는 한 생명과 그 생명을 둘러싸고 있는 인물 군상의 내면 풍광에 대한 조밀한 바라보기...


「낙마」.

장흥수라는 이름을 가진 화가와 그를 정신병원으로 모시기 위해 찾아간 최배중의 엇갈리는 듯한 만남. 장흥수는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영원한 연인이자 그림, 그리고 인생의 거울처럼 반듯하고 초현실적이었던 명주를 최배중에게 부탁하고 정신병원으로 향한다. 최배중은 제 발로 찾아가고, 병이 모두 나은 다음에도 나오려 하지 않던 정신병원에 가는 대신 장흥수의 자리에 머뭇머뭇 거리면서도 주저 앉을 태세이다. 그실 숨겨진 의미는 오리무중이다. 아직 독서의 몰입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나의 메마른 황폐함 탓이리라, 장마는 다가오는데...


「분실들」.

표제작이자 마지막 작품이다. 자신의 분신들을 죽이고, 이제 자기 자신을 죽이기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죽음이 아니어도 좋은) 위해 경찰에게 붙잡힌 한두조, 그를 취조하는 검사이며 한두조에 의해 그의 마지막 분신이라 일컬어지는 나, 사이에 성립되는 등식... 두 사람을 부등이 아니라 근거리의 대등한 위치로 몰아붙이는 작가의 의도는 명백해 보인다...


다섯 편의 작품이 어떤 자기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사유의 흐름을, 또는 언어의 유희를, 또는 골탕먹이는 자아를 지니고 있어서 좋다. 하지만 역시 쉽게 자신을 내주지 않는 작가이다, 최수철은... 몰입 또는 어처구니 없는 집착이 필요한 때이다, 나는...



최수철 / 분신들 / 문학과지성사 / 341쪽 /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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