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세계까지 따라 붙는 집요한 인터뷰, 그러나 때로는 조촐하게...
블랙 유머의 대가이자 동시에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충만하였던 커트 보네거트의 장르 애매한 책이다. 일단 예스24의 분류에는 에세이로 되어 있는데, 알리딘과 교보문고와 인터파크도서의 분류를 보니 영미소설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얼렁뚱땅 설정을 해보자면 에세이 형식의 소설 즈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닥터 잭 키보키언은 죽음에 이르렀다 돌아오는 나의 여행을 감독합니다. 사후세계에서 돌아온 여러분의 기자는 이제 방송을 마쳐야 합니다. 독극물주사 사형실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았거든요. 또 한 번의 백 퍼센트 처형을 준비해야 한다네요...”
책은 커트 보네거트 자신이 잭 키보키언이라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 텍사스 주에 있는 헌츠빌이라는 곳의 교도소, 독극물주사 사형 집행실에서 임사 체험을 통하여, 사후 세계로 접근을 한 다음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녹음하고, 이를 다시 정리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돌프 히틀러나 아이작 아시모프처럼 유명한 인사들은 물론이려니와 그저 술집 주인일 뿐인 존 웨슬리 조이스와 같은 평범한 인물들까지 모두 스물 한 명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인터뷰이들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메리 D. 에인즈워즈 박사, 살바토레 비아지니, 버넘 버넘, 존 브라운, 로버타 고르서치 버크, 클래런스 대로, 유진 빅터 데브스, 해럴드 엡스타인, 비비언 핼리넌, 아돌프 히틀러, 존 웨슬리 조이스, 프랜시스 킨, 아이작 뉴턴, 피터 펠레그리노, 제임스 얼 레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셸리, 필립 스트랙스, 칼라 페이 터커, 킬고어 트라우트, 아이작 아시모프
아주 얇은 책으로 (게다가 중간중간 삽화까지 들어 있으니) 약한 불면증이라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잠들기 전에 몽땅 읽을 수 있다. 죽은 사람을 쫓아가서 인터뷰를 진행하는 악착같은 커트 보네거트 기자이지만 그 유머만큼은 여전하여서 책을 읽는동안때때로 유쾌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에 대하여 이보다 더 간략하게 설명할 수는 없으리, 라고 여겨지는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말이다.
“... 나는 여자들이 뭘 원하는지 안다. 여자들은 가급적 많은 사람과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할까?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한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무엇을 원할까? 남자들은 많은 친구를 원하고, 사람들이 함부로 덤비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날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는 대가족을 이루지 않기 때문이다. 한때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면, 신부는 모든 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많이 알게 되었다. 신랑에게도 멍청한 농담을 주고 받을 새 친구가 많이 생겼다... 지금도 없진 않지만, 극소수 미국인만이 대가족을 이루고 산다. 나바호족과 캐네디 가 정도다... 오늘날은 대개 결혼하면 상대방에게 고작 한 명 더해주고 끝이다. 신랑은 친구 한 명을 더 얻지만, 그나마 여자다. 여자는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한 명 더 얻지만, 그나마 남자다.”
이와 함께 작가가 가지는 예의 그 무정부적인 성향을 (이와 함께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성향도) 드러내는 부분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베트남 전쟁에서의 죽음을 한낱 개죽음으로 여긴다거나 아래와 같이 TV 카메라가 돌아가는 법정에 대해서 신랄하게 묘사하는 부분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 카메라의 존재는 결국 중대한 사실을 인정하는 증거라네. 사법제도는 언제 어디서나 정의가 실현되든 말든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일세. 로마의 원형경기장처럼 사법제도는 불공평한 정부 - 그렇지 않은 정부는 없지 - 가 살아 있는 목숨들을 가지고 대중에게 엄청난 오락거리를 제공하는 수단이라네.”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사적 배경을 심도 깊게 생각하며 읽으면 오히려 머리만 아플 것이고, 그저 조촐한 읽을거리로 여기면서 수월하게 읽는 편이 나은 책이다. 화장실에 두고 들어갈 때마다 인터뷰 한 두 개를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화장실에서 읽는 아돌프 히틀러와 커트 보네거트 혹은 아이작 아시모프와 커트 보네거트의 인터뷰라는 설정은 꽤 재미있고 동시에 의미심장하지 않겠는가...
커트 보네거트 / 김한영 역 / 이강훈 그림 / 신의 축복이 있기를, 닥터 키보키언 (God Bless You, Dr. Devorkian) / 113쪽 / 2011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