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화된 독서광 쥐 퍼민을 향한 감정이입에는 결국 실패했지만...
“어느 날 장자는 자기가 나비로 바뀌어 행복하게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이 나비는 제가 꿈을 꾸고 있는 장자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음에 그는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온전히 바뀌어 잠에서 깼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기가 나비로 바뀐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인지, 사람으로 바뀐 꿈을 꾸고 있는 나비인지를 알지 못했다.” - 장자 <제물론>
역시 책날개에 실려 있는 극찬의 말들은 믿을 것이 못 된다. 재미있는 책을 읽고 싶은 생각에 덥썩 붙들었으나 입맛만 다시게 된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책을 읽고 있자면 내가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반쯤 수면 상태에서 글자만을 읽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여기기 일쑤이다. 그런 면에서는 소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작가가 가져다 붙여 놓은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호접몽 이야기가 마치 내 독서의 예고편 같았다고 해야겠다.
“이것은 내가 이제껏 들어본 가장 슬픈 이야기다. 이 소설은 모든 진정한 이야기처럼 그렇게 뜬금없이 시작된다. 시작점을 찾는 것은 강의 수원을 찾으려고 하는 것과 같다. 델 듯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물에 잠긴 탓으로 집어 들면 해어지는 지도를 들고, 늘어진 가지들이 물가로 떨어져 내린 높이 솟은 정글의 초록색 장벽들 사이를 헤치며 몇 달씩 상류로 노를 저어가야 한다...”
뭔가 거창하게 시작되는 (그러니까 작가는 자신의 소설이 거창하게 시작되기를 원한다고 솔직하게 말하는데 그러한 솔직함은 맘에 들지만) 소설이지만 그 관념의 장벽은 높기만 하고, 그 장벽을 넘어서 날아가는 나비의 비행은 생각처럼 유연하지 못하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풀럭풀럭 추락하려는 것을 추스르느라 바쁘다. 그렇게 몇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야 겨우 보스톤의 스콜리 스퀘어라는 도시의 한 서점 지하실에서 태어난 쥐 퍼민과 마주치게 된다.
“내 가족은 대가족이었고 얼마 안 가서 곧 우리 열셋은 그 나름의 가락 속에서 한데 엉겨 붙어 있었다... 우리 모두는 곧 열두 개의 젖꼭지를 놓고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어딘가 쇠락의 기운이 가득한 도시의 뒷골목을 돌아다니는 엄마 쥐로부터 태어난 열 세 마리 중 막내인 퍼민은 그러나 젖꼭지 싸움에서도 비열한 형과 누나들에게 밀린다. 그렇게 근근히 생명을 연장시키는 퍼민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찢겨진 소설 속 페이지 내부의 글들이다. 이제 퍼민은 먹을 것을 놓고 벌이는 사투로부터 멀어지는 대신 현대문학의 주요 작가들의 책을 읽는 일에 푹 빠지게 된다.
“은밀함 Confidential 을 뜻하는 C자 모양의 그 천장 틈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것은 인간 세상을 내다보는 일종의 창문, 나의 첫 번째 창문이었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책과 같았다. 우리는 책을 통해 우리가 소해 있지 않은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으니까. 나는 그 자리를 벌룬 ballon 이라고 불렀다. 내가 거기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볼 때의 느낌이 꼭 기구를 타고 그 방 위로 떠다니며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니까 퍼민이 태어난 곳이 서점의 지하실은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그는 이제 하나둘 자신의 형과 누나가 그곳을 떠난 뒤에도 서점에 남고, 천정에 올라가 ‘지식의 열쇠 소지자’라고 생각하는 서점 주인 노먼 샤인을 바라보며, 혹은 그에 대해 상상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상념 속에서 믿고 따르던 노먼 샤인과 눈을 마주친 이후 퍼먼은 그에 의해 죽을 고비를 겨우 넘기게 되고 그 건물에 살고 있던 또다른 인물인 비범하고 외계인적인 예술가라고 스스로 칭하는 제리 머군의 집으로 옮겨지게 된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도시 계획의 일환으로 없어지게 되는 스콜리 스퀘어에서 이들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오래 버티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노먼은 자신의 서점에 있는 책들을 주민들에게 거저 넘기고 난 이후 서점을 떠나고, 퍼먼을 돌보던 제리는 어느 날 귀가길에 머리를 다쳐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 퍼민은 이제 자신이 즐겨 찾던 리알토 극장, 그곳에서 심야 시간에 틀어주던 포르노의 여주인공인 진저 로저스의 환상 속 방문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하여, 혹은 독자들을 향하여 안녕을 고한다.
말은 할 수 없지만 글 읽기를 좋아하고, 포르노 속 여인들을 향하여 환상하며, 장난감 피아노로 연주를 하는 쥐 퍼민은 꽤 구미가 당기는 설정이다. 그러나 이 유머러스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전혀 유머러스하지 않다. 난해하고 관념적이며 추상적이고 들떠 있다고나 할까. 그러니까 결국 의인화된 쥐를 향한 감정이입에 (사실 나도 퍼민만큼이나 책 읽기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실패했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샘 새비지 / 황보석 역 / 소설 쓰는 쥐 퍼민 (Adventures of a Metropolitan Lowlife) / 264쪽 / 2009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