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우 《청춘의 동쪽》

향수 가득한 상념의 골들을 따라서 움직이기는 하지만...

by 우주에부는바람

*1999년 5월 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서쪽 나라에 유학중이던 나, 김윤수는 살아가는 것의 무료함에 지쳐 자신의 고향인 동쪽 나라의 조안진에 돌아온다. 나는 서쪽 나라에 있는 동안 이오라는 개(원래 이름은 순실이었으나 주인공이 이오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후 그렇게 불린)의 죽음을 맛보았고, 그것은 동쪽 나라에 발생하였던 개기 일식의 날과 겹쳐진다.


동쪽 나라의 내 친구들인 영훈, 재국, 석태, 성민은 바로 이 개기 일식이 있던 날 발생한 공수 부대원의 살해에 연루되어 갖은 곷를 겪은 바 있고, 아직까지도 그 개기 일식이 걷히지 않은 탓에 호근이라는 경찰관이 된 친구에게 주누이 들어 있는 상태다. 게다가 재국, 석태, 성민은 취조를 받고 나오는 과정에서 영훈의 잘못된 점을 열 장 분량으로 쓰고 나온 탓에, 겹겹의 열패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의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민석은 호근을 대하는 친구들의 태도에 심한 자괴감을 느끼며, 어느 술자리에서 호근에게 대들다가 군 수사대에 끌려가게 된다.


그리고 나와 연관된 두 명의 여인 미나와 혜란... 미나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냈으나, 미나가 품는 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로 인해 서먹한 상태이다. 혜란은 군에 입대하기 직전, 유명한 조안진의 깡패였던 내 선배의 약호자였다가 이제는 딸만 하나를 둔 채 버림받은 여인이자 현재 내 마음을 온전히 가져간 사랑하는 여인이다.


이들 등장인물들이 겪어내는 이십대의 격앙된 경험을 그려낸 소설이다. 조안진이라는 바닷가, 은호리의 해수욕장, 남쪽 나라의 공수부대에 의한 학살 소식, 비릿한 경찰과 군 조직의 공포, 운명적 비관론의 만연, 젊음을 빙자한 나태와 그 속에서 은연 중 자행되는 자기 학대로서의 자살, 부모와 자식 세대간의 무분별한 멸시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간극들... 팔십년대 초반을 장식하는 이 많은 사건들을 좀더 사적으로, 그래서 성큼 드러나지 않도록 노력한 소설이다.


평론가 한기는 이 작품을 두고 악마적 내면의 드러냄을 운운했지만, 그렇게 거창하게는 보이지 않고 단지 객쩍은 단어들 사이에 패인 상념의 골들 사이를 보자면, 향수가 가득 배인 아픔, 그래서 제대로 아프다고 믿기지 않는 그 우유부단함과 그 우유부단함이 통과한 기억의 기록을 통한 여러 향수의 정리 정도로 보인다. 낯설음이 지나쳐 이제는 오히려 낯이 익은 박상우식 단어의 사용과 그 조합이 더 이상 상념의 깊이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박상우 / 청춘의 동쪽 / 해냄 / 357쪽 / 1999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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