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 《홍어》

혀에 감기는 감칠맛으로 오롯하게 살아나는 김주영의 톡 쏘는 문체란...

by 우주에부는바람

*1999년 4월 2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사리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들이 있다. 김주영의 홍어가 그렇다. 작가의 입담이야 워낙 유명하여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가붓한 한 권 짜리 책으로 이리 가볍게 읽기는 처음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읽어 왔던 작가처럼 살가움에 한 번 빠지면 한 시간이든 두 시간이든 쉽사리 빠져 나올 수 없는 마력에 흡수되고 만다.


소설을 읽고 있자면 이제는 돌아가신 전라북도 부안군 주산면 돈계리 425번지, 그리운 할머니댁에서의 추억들이 오버랩된다. 할머니 옆집에 살았떤, 이제는 이름도 까먹은 소녀가 도회에서 온 소년을 만나기 위해 고구마 등속을 소쿠리에 담아 내오던 일, 마당에 쌓인 짚더미에 불쏘시개를 넣었다 뺐다 눈이 녹아나가는 걸 넋이 빠진 것처럼 구경하다 그만 불을 내는 바람에 온 동네를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일, 물론 그 일로 나에게 매질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큰아버님도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여름엔 수박을 서리해서 공동묘지에서 주먹으로 깨뜨려 먹었던 일, 서리한 수박을 들고 도망가다 뛰어 내린 논바닥에 깔려 있던 전기선(아마도 소들이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을 밟아 온 몸이 실컷 전기를 먹어서 며칠 동안 할머니 몰래 손이 떨리는 것을 감수해야 했던 시간들까지도 오롯이 되살아난다.


여하튼 이처럼 오래전 기억들이 살아나는 데에는 홍어에 나오는 등장인물 나의 어머니가 너무나 입체적인 탓이다. 집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며 아들 하나와 단촐하게 삶을 꾸려나가는 어머니의 겉모습은 너무나도 조용해서 두꺼운 얼음 위에서 바라보는 소리 없는 시내의 흐름 같다. 하지만 어머니의 심경은 수없이 많은 각을 지닌 입방체처럼 투사되는 빛의 방향에 따라 너울거리는 입체감을 지니고 있다.


그녀의 사고방식은 어린 나는 도달할 수 없는 풍파에 닳아 그윽한 면모를 지닌다. 나는 그녀를 경외하고 그런 경외의 표정을 가진 나는 어머니의 입체적인 속내를 파악할 수 없어 오리무중이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집에 당도하고 그렇게 머물다 떠나간 삼례 누나, 그 삼례 누나를 읍내 술청에서 다른 도회로 떠나게 만든 어머니도, 육년을 바깥으로 떠돌면서 자신의 핏줄 하나를 또 덩그러니 낯선 여인을 통해 들여보내는 아버지의 귀향을 준비하는 어머니도 나에겐 이행의 대상이 아니다.


물론 그 이해되지 못하는 어머니라는 대상의 저변에는 집 떠난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다. 소설 전편을 통해 실날만큼만 존재를 드러내는 아버지이지만 소설의 이름오 떡하니 자신의 상징을 드러내 놓는 것을 보면, 그만큼 우리네어머니의 그 입체적인 모양의 태반이 제 지아비 또는 제 자이비의 분신으로서의 자식들에 연유한 것이리라. 이러한 연유들이 밑반찬처럼 놓여 있으니 소리내어 읽어서 혀에 척척 감기는 감칠맛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김주영 / 홍어 / 문이당 / 293쪽 / 1998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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