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유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얼키고 설킨 부조리한 관계들...
*1999년 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작가의 작품이 부추기는 새로운 개성의 등장인물들과 스토리 라인이 흡족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작품에서 보이는 서적수집상과 테러리스트의 멀쩡해 보이는 사고들은 만족스럽다. 특히 작가가 꾸준히 살피는 PC 네트워크 상의 소통방식을 드러내 보이는 테러리스트의 활동상도 그러려니와 서접수집인이라는 알려지지 않은 직업을 통해 활자 매체가 가지는 지식의 전달이라는 근원적 역할에 일말의 의구심을 가지는 것도 좋다.
이와 함께 테러리스트가 서적수집인과 만나고 그 서적수집인이 살해당하고, 서적수집상의 주인이 테러리스트를 잡아 들이고, 서적수집인의 주인의 아들이 그 아버지를 죽인다는 줄거리가 가지는 설정은 가족과 유사가족,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하에 얼키고 설킨 현대적 관계가 가지는 부조리함들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대중적인 문장 쓰기의 감각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바 또한 포기하지 않는 작가다.
책에는 인간과 신의 대화 인용 부분이 잠깐 등장한다.
인간 : 나는 자유 의지로 행동할테야.
신 : 그래, 내가 그러도록 프로그래밍 해놓았어.
이러한 대화가 아니어도 신에 대한 불만족스러움이야 어디 한 두 가지 인가.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인간과 신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그 일단이 드러나고는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가 믿고 따르는 많은 도덕률 또한 알고 보면 신과 인간의 관계라는 설정과 비슷하다. 따르고 싶지 않지만 무슨 원죄처럼 따르지 않으면 안 되게끔 만드는 권력들과 그 힘에 버금가는 일탈의 유혹... 그 사이에서 갈등하도록 프로그래밍 된 현대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마냥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항상...
송경아 / 테러리스트 / 문학과지성사 / 235쪽 / 1999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