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제훈 《퀴르발 남작의 성》

원형의 보존이 아니라 원형의 훼손과 변형을 통하여 또다른 창작의 경지에

by 우주에부는바람

흔히 창작을 신의 그것과 견주고는 한다.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유일무이한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21세기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가능할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생각되어진 것이거나 동시간으로 누군가가 생각하고 있는 것일 확률이 높다. 그러니 아예 여기 최제훈처럼 유에서 또다른 유를 창조하는 것으로 생존의 전략을 세우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문학의 한 경향이기에 충분하며, 또한 그것만으로도 유의미한 일이다. 그것도 이렇게 재미있게...


「퀴르발 남작의 성」.

원작 소설인 <퀴르발 남작의 성>, 그리고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 <퀴르발 남작의 성>, 여기에 원작 영화와 원작 소설을 동시에 고려한 영화 <도센 남작의 성>에 이르는 이야기의 변형과 확산에 대한 다큐멘터리식의 소설이다. 원작의 훼손이 아니라 원작의 내용에 대한 새로운 고찰 내지는 이를 통한 확산의 과정을 중구난방으로 다루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원작의 모티브가 되는 사실로까지 (그 반대편으로는 블로그의 글까지) 그 탐구를 이어가고 있으니, 가히 이야기 종합선물세트의 제조와 유통, 판매, 판매 후의 고객 분석까지를 자신의 소설 쓰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일종의 선전포고가 아닌가.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

소설의 안과 밖의 경계를 유유자적 지워버린다. 휴가를 떠난 셜록 홈즈 (실제로 코넌 도일이 잠시 집필을 중단하기도 했다는데), 그리고 바로 그곳에서 벌어진 코넌 도일 선생의 자살 사건... 이제 셜록 홈즈는 자신의 창조자인 코넌 도일경의 자살에 숨겨져 있는 비의를 파헤쳐야 하는 난관에 봉착한다. 창조자와 창조물이라는 주객을 전도시킨, 또는 주객을 난도질하면서도 태연자약한 상상력으로서의 소설이라니...


「그녀의 매듭」.

자신의 바로 옆에서 벌어진 많은 일들을 향하여 보내는 투박한 주어로서의 시선... 자신의 사랑도 자신의 우정도 자신의 시기도 자신의 기억도, 그것이 확연하다고 믿을만한 증거는 무엇이란 말인지... 어느 순간 매듭이 잘못 묶이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신기루나 환영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그림자 박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극단적인 고찰이다. 어느 날 스스로 불러낸 다중인격의 존재인 톰, 그리고 이 톰을 따라 등장하는 제리, 여기에 어린 시절 자신의 상상 친구였던 강우빈의 그림자까지 비치면서 결국 나는 어느 순간 살인의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히게 되는데... 그리고 이제 믿기 힘든, 자의로 발현시킨 다중 인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신증을 고백한다.


「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 - 휘뚜루마뚜루 세계사 1」.

‘많은 이들이 상상을 하게 되면 그건 더 이상 상상이 아니다.’ 맞는 말이다. 우리들이 스스로 고착화시킨 마녀의 타입에 대한 반론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우리들이 마녀를 만들어낸 이야기를 통하여 실체와는 상관없는 우리들 내부의 파괴의 메커니즘을 경고하는 것 같다. 그렇게 어느 순간 우리들 자신이 마녀가 될 수도 있다는 이 경고의 글은 월간 <마녀 스타킹>에 실려 있다는 이 작가의 깜찍한 상상력이 좋다.


「마리아, 그런데 말이야」.

뒷담화의 배경에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 우연하게 만난 동아리 후배와의 조우, 하지만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멀어져버린 두 사람의 사이를 메꿔주는 것은 바로 후배의 뒷담화의 주인공이기도 한 마리아이다. “.. 마리아는 롤플레잉 게임 속 캐릭터처럼 하나둘 아이템을 획득하며 성장해갔다. 우리는 공동 유저가 되어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품평을 했고, 각종 상황에 그녀를 투입하여 시뮬레이션해보기도 했다...”


「괴물을 위한 변명」.

“... 아무튼 지금까지도 무한한 상상력의 터전이 되는 명작을 남겨주신 점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비록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변형된 유사품이 다반사로 유통되지만, 해석의 다양성이라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원작인 소설 <프랑켄슈타인> 그리고 그 창조자인 메리 셸리에 대한 다양한 분석틀을 적용시킨다. 원작의 변형이되 그 변형 조차 하나의 창조물로 여기게 만드는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인 것이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이 주인공인 소설이 영화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사실이 주는 어떤 변형의 섬뜩하고 기괴한 과정이 주는 공포라는 것도 있다.


「쉿! 당신이 책장을 덮은 후……」.

나름 일관성 있는 소설집에 작가 스스로가 나서서 생명력을 부여하는 과정인 소설이라고 봐야 하겠다. 작품집에 실린 등장인물들이 직접 화자로 나서서 한 마디씩 보탠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스르륵 깨어나 움직이는 인형들처럼, 활자라는 몸체를 가지고 책장 속 책의 페이지들 사이에서 태연하게 잠든 체 하는 주인공들도 이렇게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살아 움직인다고 강변하는 것처럼...



최제훈 / 퀴르발 남작의 성 / 문학과지성사 / 304쪽 /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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