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해 보이는 빈틈의 구석구석에 매력을 포진시키는...
요며칠 잠을 잘 이루지 못한 덕에 몇 권의 책을 한꺼번에 읽을 수 있었다. 그중 츠바이크를 비롯해 두꺼운 책들을 주로 읽었더니 팔이 아파서 (본래 자기 전에 누워서 책읽는 버릇이 있어 두꺼운 책을 보다보면 팔이 아프다, 벌 받은 것처럼...) 집어든 것이 바로 요시다 슈이치의 이번 소설이다. 그런데 웬걸 이번에는 소설이 너무 재미있어서 밤새 쉬지 않고 읽었더니 오래 팔을 들고 있었던 탓에 얇은 책을 고른 것 또한 헛수고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니까 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가 그만큼 재미있다는 이야기이다.
소설은 도쿄로 대학 진학을 하면서 상경한 규슈 청년 요노스케가 조금씩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이름인 요노스케는, 일본 에도시대의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일본 性문학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이하라 사이카쿠의 <호색일대남>이라는 풍속 소설, 성문학의 고전이라 불리우는 이 소설에 나오는 일곱 살 때 사랑에 눈을 떴다는 주인공의 이름이 기도 하다.
(고전 소설 속의 요노스케가 열아홉 살이 되던 시절 집을 떠나 방랑에 오른다고 하는데, 아마도 작가는 이 소설 속 요노스케의 성장과 주인공 요노스케의 성장을 빗댄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는 해도 일본의 이 고전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으니 어딘지 어수룩하면서도 착해 빠진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속 요노스케와 비교해볼 방법은 없지만...)
소설은 주로 요노스케가 만나는 도쿄의 사람들, 그리고 대학의 친구들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도쿄의 변두리에 자리를 잡은 요노스케는 이사 첫 날 옆집에 사는 여자인 교코와 안면을 트고 뒤이어 신입생으로 들어간 대학에서는 구라모치와 아쿠쓰 유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된다. 여기에 함께 상경한 고향 친구인 오자와와 운전 학원에서 새롭게 만난 가토, 가토와 함께 하면서 만나게 된 부잣집 딸 쇼코와 그 사이 우연하게 짝사랑에 빠지게 되었던 가타세 지하루까지, 이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이 신학기가 시작되는 4월에서 다음해 3월까지 월별로 나뉜 챕터를 통하여 전달된다.
“요노스케와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이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아마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 시절에 요노스케와 만나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와함께 현재를 기준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중간에 불쑥 (네 번 정도) 등장 인물들의 미레 시점 스토리가 끼어든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는 결혼을 한 구라모치와 아쿠쓰 유이가 자신의 딸로 인해 고생을 하고 있다는 설정인데 (이들은 현재는 대학 신입생이지만), 이들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요노스케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다. 덕분에 요노스케 이야기라는 소설을 통해 요노스케에 대해 알게 된 독자인 나조차 뭔가 득을 보고 있다는 기분이랄까.
“... 응, 변했어... 갓 상경했을 때보다... 빈틈이 없어졌다!?... 요노스케 군이 빈틈이 많은 건 확실해. 그렇긴 한데 그래도 그게 점점 채워진 것 같다고 할까...... 어중간하지 않으면 그땐 정말로 요노스케 군이 아닌 거지. 그 부분을 잘 간직해야 해.”
그렇게 일년여의 시간이 흐르면서 요노스케는 구라모치나 가토와 같은 친구들을 사귀고, 가타세 지하루와 같은 미스터리한 여인에게 흠모의 감정을 품는가 하면 부잣집 딸내미이면서도 순진하기 그지 없는 쇼코와 사랑을 하게 된다. 그렇게 어딘가 빈틈이 많고 그 빈틈이 또 매력이기도 한 요노스케라는, 맺힌 것이 없고 청명하기까지 하며 허심탄회한 캐릭터를 통하여 독자들을 웃고 울게 된다.
거미줄처럼 사방팔방 흐트러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 형식, 그러니까 요노스케가 만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느닷없이 몇십년 미래로 훌쩍 등장인물을 끌고 가는 것과 같은 형식은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 순간에 아주 차분하면서도 극적으로 어느 한 지점, 그러니까 방사형 거미줄의 중간이자 처음 거미줄이 시작된 한 지점으로 독자들을 쑤욱 빨아 들이는 효과를 발휘한다. 연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잘 기획된 소설은 이렇게 마지막까지도 대중적인 흡입의 기술을 잃지 않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은 훌륭한 설정이며, 역시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요시다 슈이치 답다.
요시다 슈이치 / 이영미 역 / 요노스케 이야기 (橫道世之介) / 은행나무 / 492쪽 / 2009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