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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몽 라디케 《육체의 악마》

열 여섯과 스물 하나, 그 서툴러서 치명적이고 오히려 성숙하였던 사랑에

by 우주에부는바람

*1999년 5월 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대학교 일학년 때던가 아마도 어떤 소설과 그 소설에 등장하는 영하에 동시에 등장한 이 소설 제목을 듣고 읽어야겠다, 작정한 듯하다.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흘렀고 이제야 읽게 되었다. 상당히 야한 소설일 것이라는 지금까지의 추측, 이 추측이 어디서 연유한 것인지는 어림짐작 할 뿐인, 그 추측을 한참 비껴가는 아름답고, 서글프고, 초췌한 하이틴 성장 로맨스 교양 소설이라는 느낌이다. 게다가 작가의 문체와 생각은 상당히 현대적이다.


열여섯의 소년이 느끼는 불륜의 사랑에 대한 초연한 경험담이 격정과 침잠의 사이사이에서 작성되고 있다.


"... 이 모든 애무는 흔히 사람들이 믿듯이 사랑을 나누려고 교환되는 잔돈푼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그것은 가장 희귀한 돈과 같아서 단지 열정만이 그것의 힘을 비는 법이다..."


작품의 약 삼분의 일이 흘러가고 나서야 두 등장인물 나와 마르트 간의 애무가 비로소 시작된다.


"... 닭들은 밤새도록 울어댔었다. 그래서 비로소 나는 닭들이 해가 뜰 때 운다고 하는 말이 시적인 거짓말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애무가 끝나고 섹스로 이어지는 데에는 그 시간이 조금 절약된다.


"사랑처럼 사람의 정신을 독점하는 것도 없다. 본디부터 게을러서가 아니라 사랑에 빠지면 빈둥거리게 되는 법이다. 사랑은 모호하게나마 현실적으로 기분을 전환시키는 유일한 것이 일임을 느끼고, 그것을 일종의 라이벌로 간주한다. 그리고, 어떠한 라이벌의 존재도 견딜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느른한 비가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처럼, 유용한 게으름이다."


사랑의 진행은 더디고 애잔하지만 비운의 사랑임에도 둘은 안스러울 정도로 느긋하다.


"본능은 우리의 인도자이다. 우리를 스스로의 파멸로 이끄는. 어제만 해도 마르트는 임신이 우리를 서로에게서 멀리 떼어놓을까봐 두려워했다. 오늘, 그녀는 일찍이 나를 이토록 사랑한 적이 없었따. 그녀는 자신의 사랑이 그런 것처럼 나의 사랑도 한층 커졌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아이를 거부했던 나는 오늘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 그만큼 마르트의 몫을 거두어들였다. 마치 우리 관계의 초창기에 내 마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거둬들인 것을 전부 그녀에게 바쳤듯이."


하지만 젊은이의 열정은 올곧지 못하다. 열여섯인 나는 스물 한 살의 그녀가 늙어간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 그녀는 중얼거렸다. 나는, 너랑 있으면서 불행한 편이 그 사람과 있으면서 행복한 편보다 좋아. 바로 이런 것이 별뜻 없으면서도 옮기기 부끄러운,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당신을 도취시키는 사랑의 말이다..."


임신한 그녀를 데리고 무책임하게 돌아다니는 나에게 그녀는 순결한 헌신의 사랑을 보내지만 나에겐 그마저 이해할 의무가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아이를 낳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에게 주인공의 이름을 붙였다. 그녀의 남편인 자크는 어느날 내 집을 찾아와 아내가 죽는 순간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고 말한다. 불륜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어렸고, 하지만 진지했고, 그런만큼 길지 않았던 나와 마르트의 사랑의 대단원은 이렇게 서툴어서 더욱 성숙한 마침표를 찍는다.



레이몽 라디케 / 김예령 역 / 육체의 악마 (Le Diable au corps) / 문학과지성사 / 197쪽 / 1999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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