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게 진행되는, 피해와 가해가 뒤섞인, 묘하게 어두운 악행에 대하여
왁자지껄한 중학교 교실... 아마도 선생으로서 마지막으로 교단에 선 것처럼 보이는 유코이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각자 자신의 의지에 따라 떠들고, 괴롭히고, 무시하고, 짜증내고, 아주 간혹 염려한다. 그리고 유코 선생은 담담하게 고백한다. 얼마전에 죽은 자신의 딸은 실은 사고사로 죽은 게 아니며, 자신의 딸을 죽인 범인 두 명이 바로 이 반에 있다는 사실을...
“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하지만 유코 선생은 그 두 사람을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그래봐야 아직 형사 처벌 대상이 되는 나이인 열네 살이 되지 않아 처벌이 되지도 않을 것이므로) 그저 담담하게 같은 반 아이들에게 같은 반 친구인 두 사람의 살인 행각을 알릴 뿐이다. 이와 함께 유코 선생은 그 범인인 두 사람이 먹은 우유에 알려져 있지 않았던 (유코의 죽은 딸) 마나미의 아버지, 에이즈에 걸린 그의 혈액을 넣었음 또한 알림으로써 아이들을 기겁하도록 만든다.
이와 함께 나 또한 기겁을 했는데, 이 챕터만으로도 어찌나 완결성을 갖고 있는지, 이러한 고백과 함께 영화의 한 챕터가 끝이 났음을 알리는 자막 뒤로 한참 동안 새로운 화면이 나타나지 않자, 나는 이렇게 영화가 끝이 난 거야, 라는 순간적인 두려움으로 잠시 얼이 빠져버린 탓이다. 하지만 (마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처럼) 이미 범인을 관객에게 알려준 영화는 다시 한 번 힘을 낸다. (사실 영화는 <고백>이라는 미나토 카나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고백을 토대로 흘러간다. 우리는 피해자와 범인, 그리고 범인의 주변 인물의 고백을 통하여 사건을 재구성하게 되고, 그들이 겪은 사건들을 향하여 어둡게 몰입해간다. 어째서 수재인 A는 어머니와 헤어지고 난 후 발명에 몰두하였고 유명해지기를 원했는지, 평범한 학생이던 B는 왜 A의 범죄에 동조하였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기를 제어하지 않았는지, 담담하게 설명되는 동안 이 몰입의 감정은 점점 커져서 극한으로 치닫는 영화 속 이야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여기에 범행이 알려진 후 이지메 포인트를 모으면서 A를 괴롭히는 집단 가학 증세를 보이는 반 아이들, 그 자신이 가족을 살해한 여자 아이를 동경하면서 A를 이해하고자 한 반장 미즈키, 등교를 거부하는 B와 B의 어머니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의 사랑, B를 등교시키고자 계속해서 B의 집을 찾아가는 새로운 담임 교사 베르테르가 얼기설기 등장하면서 시종일관 고조된 감정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막아선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영화는 거대한 폭발을 향하여 내달린다. 소년 B와 어머니, 소년 A와 미즈키, 그리고 이 두 사람(아니 이들 네 사람과 베르테르 선생까지)을 수렁으로 밀어 넣는 담임교사 유코의 치밀한 작전은 결국 성공하고 모두가 죽거나 파멸하는 것이다, ~라나 뭐라나...
사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들이 저지른 일들에 있다기 보다는 이러한 일을 저지른 뒤에 그들이 말하는 방식에 있다. 어마어마한 음모 속에서 극단의 행동을 보인 뒤에 이들은 태연하게 말한다. ‘~라나 뭐라나.’ 도덕이나 윤리를 모르고 저지르는 행위들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 때 옳다는 판단을 받게 될 것인지를 아주 잘 알고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행동하면서 사회적 판단이나 주변 사람들의 판단 같은 것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태도가 오롯하게 박혀 있는 저 말투가 더욱 공포심을 자극하는 셈이다.
원작이 가지는 스토리의 힘과 더불어 (영화를 보면서 원작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이미 <불량공주 모모코>와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을 통하여 일반적인 영화 리듬을 배반하는 연출력을 선보였던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영화 이전에 나카시마 테츠야는 CF를 감독했다고 하니) 또 다른 색깔의 연출도 나쁘지 않았다. 여기에 학생들 앞에서 담담하게 고백하는 마츠 다카코나 폭발할 것 같은 내면의 본성을 꾹꾹 눌러담거나 아무렇지 않게 폭발시켜 버리는 두 소년의 연기도 크게 오버하지 않고 좋았다고나...
어줍잖은 청소년 계도 대신 그들의 숨겨져 있는 악한 본능, 그리고 그러한 본능을 일깨우는데 일조하는 어른들, 그러한 본능의 표출에 대하여 무시무시한 복수로 대응하는 또 다른 어른을 다루고 있는 영화는 그야말로 착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반장 미즈키가 A를 이해하려 한 이유 또한 그의 살인 본능에 대한 감정적 동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야 할테고, 베르테르 선생 또한 자신이 우상화한 책자 속 선생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그의 선한 것처럼 여겨지는 행위에 앞선다고 봐야 하니) 몇 안 되는 영화라고 해야겠다. 오랜만에 볼만한 일본 영화였지만, 보고 나서 모래를 씹은 입속처럼 찝찝하고 무겁고 서걱거리는 기분에 사로잡혀야 한다는 사실에는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겠다.
고백 (告白, Confessions) /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 / 미나토 카나에 원작 / 마츠 다카코, 니시이 유키토, 오카다 마사키, 키무라 요시노 外 출연 / 106분 / 2011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