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희 《구경꾼들》

세상의 모든 사람, 사물, 상황에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는데...

by 우주에부는바람

“... 아이스박스에 갇혔다 나온 후로 아버지는 사물을 보면 어떤 이야기가 저절로 떠오르곤 했다...”

세상 모든 것에는, 그러니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황이든,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윤성희는 한 사내아이의 가계도를 샅샅이 훑으면서 이러한 이야기의 본질 혹은 이야기를 하는 자의 본능을 파헤친다. 어찌보면 성장 소설이라는 외피를 둘렀다는 점에서 최근에 읽은 은희경의 소설과 일맥상통하지만, 성장 소설을 이렇게도 쓸 수 있다고 보여주는 듯 비교우위를 가지는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꽤 두툼한 소설은 사내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아버지가 시골로부터 서울로 집을 옮기고 그곳으로 어머니가 들어오고, 그렇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두 명의 삼촌과 한 명의 고모가 있는 집에 내가 태어나면서 일반적인 패턴의 가족 소설로 안착을 하는 듯 했다.

“... 신문에는 지구 저편에서 일어난 황당 사고가 실려 있었다. 생활고를 비관한 미혼모가 삼층 건물에서 뛰어내렸는데, 하필이면 그 아래를 지나가던 남자를 덮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둘 다 죽지 않았다. 남자는 어깨와 다리가 부러졌고 여자는 타박상을 입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나의 외할머니를 포함한 대가족의 나들이가 교통 사고로 이어지고, 천만다행으로 모두가 경미한 부상만을 당하는 천운을 입고, 그렇지만 어이없게도 병원에서 떨어져내린 사람에 의해 큰 삼촌이 황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동생과 비슷한 우연의 사건 속에서도 목숨을 건진 사내의 이야기를 접한 나의 아버지는 직장까지 그만두면서 어머니와 함께 그 사내를 찾아가는 여정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렇게 일 년여에 걸친 여행을 한다.

“부모님은 편지를 읽은 후, 남자에게 인상적인 사연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남자와 부모님은 답장을 보낼 편지들을 신중하게 골랐다. 답장을 받은 사람들 중 몇몇은 다시 답장을 해주었다. 시간이 되면 놀러 오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모님은 그 편지들을 복하새 가방에 넣었다. 그들을 만나는 데 일 년은 너무나 짧았다.”

돌아온 아버지는 직장을 구하는 대신 자신의 여행을 책으로 쓸 결심을 하고 결국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책은 출판된다. 그 사이사이 나는 이 대가족의 막내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가족 구성원들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들로 채운다. 하지만 책을 출판한 이후에도 여행을 멈추지 않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국 이야기들을 채집하러 다니다 돌집에서 사고를 당하고, 나만이 겨우 목숨을 건진다.

“... 작은삼촌... 나는 조용히 불러보았다. 작은삼촌이 왜? 하고 대답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속으로 작은삼촌, 작은삼촌, 하고 두 번을 더 불러보았다. 영원히 작은삼촌이라고 불려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참고 있었을까. 또 고모가 막내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어덯게 견뎠을까? 내겐 이제 삼촌이 한 명밖에 남지 않았고 고모에게도 오빠는 한 명밖에 남자 않았는데, 왜 우리는 삼촌, 오빠, 라고 부르지 않는 걸까...”

사람이 사람을 낳고, 또 그 사람이 사람을 낳고, 그러나 그 사람은 죽고, 또 다른 사람이 죽고, 마찬가지로 이야기는 이야기를 낳고, 그렇게 탄생한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향하여 여행을 하고, 그렇게 채집된 이야기는 책으로 만들어진다. 이야기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고, 어느 순간 생명력을 부여받은 이야기는 사람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간다.

“고모가 마을버스에서 기침을 하는 순간, 지구 저편에서 누군가 꽃에 물을 주다가 우연히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거나, 연인에게 목도리를 선물하려고 뜨개질을 하다 실수로 코를 빠뜨리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는데 자신도 모르게 배가 고프다는 말이 나와버리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이야기의 순환, 그리고 밝혀지지 않는 이야기의 나비 효과를 담고 있는 이야기인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부여잡고 있는 각각의 캐릭터들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는 캐릭터들의 연계도 나름 유연하다. 무엇보다 혹부리 영감의 이야기 보따리라도 되는 것처럼 어느 때고 술술 이야기를 뱉어내는 작가의 자신감이 가장 큰 장점인 소설이라고 해야겠다.



윤성희 / 구경꾼들 / 문학동네 / 312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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