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삶을 향한 구애가 아니라 밤의 어느 한 시간을 향한 구애와 같은...
*1999년 1월 21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건전한 부르조아의 도시」.
잠들지 못하는 피리는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고는 꿈에 달을 만난다. 피리는 잠들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성공하여 변호사가 되고, 잠들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아이들을 죽인 한 남자의 변호를 맡는다. 그리고 그 남자의 아내를 어렵사리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달이가. 그리고 그녀는 건전한 부르조아의 도시에서 밤에 일하는 거리의 청소부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 건전한 부르조아의 도시...
「4번 버스를 타고 떠나다」.
가수인 유리는 전직 권투 선수인 남편과의 사이에 딸을 낳지만, 그 딸은 아버지에게 맞아 사팔뜨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딸은 시인이 되고 싶어 했으니 이루지 못한 옆집 남자를 사랑한다. 육체적으로라도 그 남자와의 사랑이 이루어지려는 순간 그 남자의아내가들어오고 침대맡에 숨은 그녀의 등 뒤로 문이 닫힌다.
「1999년, 네델린다 모텔을 떠나며」.
사라. 그러고보니 등장인물들의 이름마저도 예사로운 것이 하나 없다. 먼저 사라는 1997년에 물에 빠져 죽었다. 빠져 죽기 전에 사라는 유부남인 남자에게 1999년에 결혼할 테니 돈을 달라고 졸랐지만 그 남자는 주지 않았고, 이제 1999년 그녀는 그 남자를 찾아가지만 돈을 준다는 그 남자의 제안을 거절한다. 왜 1997년에 죽었던 그녀는 1999년에 강물 속에서 걸어 나왔을까...
「여점원 아니디아의 짧고 고독한 생애」.
아니디아는 사촌인 혁명을 사랑하고 혁명은 아미와 결혼했다. 아미는 우체국 직원이던 시절 강간을 당해 혁명과 결혼한 후 반을 낳지만 그 반을 제대로 돌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혁명과 아미는 이혼한다. 사촌인 혁명을 사랑하는 아니디아의 마음은 혁명적이지는 않다. 물론 혁명도 아미를 사랑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그렇게 아니디아는 고독하다. 그래서 아니디아의 사랑은 짧을 수밖에 없다. 고독한 사랑은 아무리 길어도 짧다. 고독한 사랑은 되짚어지지 않는다. 고독은 침묵과 연결되어 있다. 긴 수다 끝에 남는 것이 없는 것처럼 긴 고독 속의 사랑은 제대로 기억되지 않는다.
「나의 첫 개」.
제 아비를 죽인 어미가 감옥에서 낳은 주인공 아녜스. 첫이라는 글자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감상으로 시작된 소설은 하지만 그 첫 개를 아녜스가 처참하게죽이는 장면으로 이어져 섬뜩하다. 외사촌 오빠를 좋아하지만 그 외사촌 오빠는 아녜스에게 준 그 개를 판 소녀와 함께 도망친다. 첫 개는 어쩌면 내 첫 사랑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첫사랑은 잔혹하게 끝이 난다. 어찌보면 대부분의 첫사랑은 그렇지 아니한가.
「한나의 검은 살」.
식인의 추억. 한나, 난 널 먹고 싶어. 식인과 섹스는 둘 모두 육체와 육체가 섞인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컴퓨터 천재였으나 자살 프로그램 개발 중에 그만 바보가 되고만, 나와 실핏줄을 타고 흐르는 듯한 감정의 교류를 하는 한나...
「장화 속 다리에 대한 나쁜 꿈」.
아미와 기는 모두 결혼에 실패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둘의 연결과 단절에 대한 이야기...
「구애」.
아비는 공원의 공중변소 좌변기에서 딸에게 매춘을 시키고, 그 광경을 지켜본다. 그리고 계속해서 정치 거간꾼이자 매춘 거간꾼의 역할을 멈추지 않는다. 그 와중에 한 남자를 알게 된 딸은 하지만 그 남자에게 구애 한 번 해보지 못한다. 그녀는 결국 제 삶을 향하여 구애하지 못하였다.
배수아 / 심야통신 / 해냄 / 296쪽 / 1998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