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청호 《소년 소녀를 만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박청호식의 힘겨운 어두움...

by 우주에부는바람

*1999년 1월 2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라푼젤의 두 번째 물고기」.

폴 오스터의 소설 <리바이어던>의 주인공인 라푼젤을 사랑하는 나. 하지만 나와 라푼젤에게 연속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켜켜이 아무 곳에나 벗겨서 던져 버린 양파 껍질을 다시 짜맞출 수 없듯이, 제자리로 돌아가기 힘든 시간들이 산재해 있을 뿐이다. 그 시간들을 유영하며 사랑하는 나와 라푼젤...


「죽은 시인의 사회」.

아! 기형도... 끊임없는 기형도...


「섬 - 어린 시절 : 여자 이야기」.

지금은 섬에서 나온, 아버지와 동생과 함께 살았고 섬 바깥에 있는 어머니를 두었던 나의 어린 시절은? 소설 속의 나는 섬에서 나온 뒤로 그 과거, 섬에서의 기억들과 단절되고, 그래서 그 기억에 집착한다. 이제 소설 바깥의 나. 내게도 섬같은 육지에서 살았떤 바다같은 논을 집 뒤에 가지고 있었던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상기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며,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란 것이 실재하기는 한 것일까?


「소년 소녀를 만나다」.

장순호, 32살, 사라진 남자. 장미래, 장순호가 사랑하였던 여자, 하지만 진정 그러한 줄을 제대로 몰랐던 여자. 그 여자 장미래가 춤추는 장면을 상상한 묘사는 아름답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그녀가 혼자 있을 때면 자기만의 춤을 추고 있었는지를. 오직 자기가 자기에게 보여주는 육체의 궤적. 이미 손이 휘젓고 니간 공기의 선. 이미 발이 구르고 떠난 땅의 울림. 그리고 몸과 공기의 마찰음. 가슴 깊은 곳의 숨결이 만들어내는 미약하지만 급한 소요. 자신이 그려낸 수많은 공기의 흐름들. 그녀가 재배치한 공기의 자리. 그녀가 춤을 추고 난 뒤의 공기의 평온. 그리고 그녀가 춤추는 동안 달아나버린 시간, 그것의 흔적."


「담뱃가게 이야기」.

박청호식 오리무중은 계속된다. 1. 마크 트웨인. 마크 트웨인은 종이로 만들어진 담배 가게를 자기고 있다. 2. 황지우. 나이며 시인이며 황지우인 나는 그 담배 가게에서 마릴린을 만난다. 3. 마릴린. 마릴린은 담배 가게에서 마크의 소개로 질을 만나고 싫지만 범죄에 가담한다. 4. 레몬과 오렌지. 잭 레몬은 오렌지로 불리우는 토미를 가지고 있다. Zero. 크리스마스. 박청호식 오리무중은 계속된다.


「빚을 갚기 위하여」.

작가가 되고 그 김에 출판사를 시작한 나는 그만 망하는 바람에 빚을 지고, 그 빚 때문에 아버지는 운다. 아버지의 울음은 소설 속에서나 소설 바깥에서나 너무 압도적이다. 그것은 정말이지 아버지가 우는 순간, 그 광경을 지켜보는 자식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무게의 짐이다. 아버지들 울지 마소서. 그건 그렇고 소설 속에서 나는 한스라는 독일 남자와 그 한스의 애인이라고 믿고 있는 메어리가 등장하는데...


「한 착한 남자의 불행」.

군에 복무중인 주인공이 휴가를 나온 시점에서 주인공의 엄마가 죽어간다. 그 죽어가는 어미에게 주인공은 쉬지 않고 떠들어댄다. 근친상간적인 요소만큼 파괴적인 것은 없다. 그 파괴는 미국에 있는 동생 경아가 자신의 매춘 경험을 떠벌리는 것을 들으면서 그 힘을 더욱 받고, 죽은 어미를 병풍 뒤에 두고 그 병풍 너머에서 치르는 섹스에서 절정을 이룬다.



박청호 / 소년 소녀를 만나다 / 해냄 / 285쪽 / 1998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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