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니컬하기 그지없는 영국의 유명 소설가 닉 혼비가 문학을 사랑하는 방법.
책은 ‘이따금 노발대발 화를 내지만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는 어느 작가의 독서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닉 혼비의 서평 칼럼집이다. 책 속의 글들은 영국의 작가인 닉 혼비가 미국의 월간 문예 잡지라고 할 수 있는 <빌리버>의 청탁에 의해 씌어진 것인데, 이 잡지는 작가들에 대해 험담을 하지 않는 비평으로 유명한 곳으로, 닉 혼비가 이러한 잡지의 편집 방향에 부합하기 위해 고곤분투하는 모양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단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닉 혼비의 그 유머러스하면서도 익사이팅한 문체에 반하여 작가의 책을 몇 권 더 구매했고 그 중의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물론 소설과는 달라서 몇 차례나 읽기를 그만둘까 고민하기는 했는데, 그가 거론하는 책들이라는 것이 대부분 따끈따끈한 영미문학의 현재이거나 우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영미문학의 클래식들이어서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탓이다.
“<빌리버>를 운영하는 선남선녀 편집위원들은 최근 별 말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별 지적이 없었다. 하지만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친구가 위층에서 흰 옷자락이 버스럭거리는 불길한 소리를 들었다고 하면서, 뭔가 상당히 큰 건수, 어쩌면 제2의 존스타운(1978년 집단자살로 유명해진 신흥종교 단체가 살던 지역-옮긴이) 같은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한다(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 기다란 흰옷에 오싹한 미소, <빌리버>라는 이름하며...... 이번 호 부록으로 물에 타서 마시는 음료 가루 봉투나 ‘먹을 수 있는 시 한 편’이 들어 있다면 독자 여러분은 손도 대지 마시길 바란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위트 덕분에 겨우겨우 독서를 진행할 수 있었다. 닉 혼비는 <빌리버>의 잡지에 실을 글을 쓰면서 끊임없이 바로 그 잡지의 편집위원들을 향하여 투덜대고, 그들을 비아냥거리고, 대놓고 빗나가겠다는 작정을 피력하고는 한다. 하지만 그러다가 또 어느새 꼬리를 내려 그들 앞에 바짝 엎드리기를 반복하니, 그 모양새 자체가 하나의 월간 시트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 그들이내게 가르쳐준 것도 분명히 있다. 가령 내게 맞지 않는 책을 고집스럽게 보는 것에는 별 의미가 없으며, 그에 대해 글을 쓰는 것에는 더욱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괴상한 영국에서는 반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맞지 않는 책만 끝까지 읽고, 그런 책에 대해서만 반드시 글을 쓴다...”
백여명이 훌쩍 넘는 작가들의 책을 구입하거나 배달받고, 그리고 그 책들 중 일부를 읽거나 중도에 읽기를 포기하면서, 좌충우돌하는 형태로 써내려가고 있는 글들을 읽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작가의 지론은 분명해 보인다. 쓸데없이 지루한 글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의 기호에 따라 혹은 문학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책을 읽지는 말라는 것이다.
시니컬하기 그지 없는 작가의 스타일은 소설이 아닌 칼럼에서도 여전하다. 그런데 그의 아들 중 한 명이 자폐아라는 사실에 관해 말하던 순간, 그러면서 자폐아에 관한 책을 읽을 때 정확하게 몰입하던 순간을 떠올리면 근본적으로는 그가 사람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까 까칠한 도시 남자인 사회지도층 현빈이 하지원을 사랑하듯, 까칠한 런던의 일급 소설가 닉 혼비는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것 아닐까...
닉 혼비 / 이나경 역 /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 (The Complete Polysyllabic Spree) / 청어람미디어 / 343쪽 / 2009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