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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1. 2024

김경욱 《거울 보는 남자》

현실이 된 미래를 너무 가까운 과거처럼 만드는...

  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죽은 남편의 얼굴을 이식한 남자와 편지를 주고받은 여자‘라는 시애틀의 한 신문에 실린 기사로부터 소설 《거울 보는 남자》가 비롯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작가는 당시 이야깃거리 두어 개를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 소설로 완성해 낸 것은 바로 그 기사 속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너무 소설적이어서 엄두가 나지 않는 이야기였음에도 작가는 그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다. 


  “남편과 닮은 듯 다른 얼굴. 그날의 옆모습은 착각이었던 걸까. 첫인상은 온데간데없었어요. 지난번에는 그저 면도 전이려니 무심히 보아 넘겼는데 일부러 기른 구레나룻이더군요. 눈매도 달랐어요. 외까풀 대신 굵은 쌍꺼풀에 눈썹도 훨씬 짙어 보였죠. 풍성한 곱슬머리를 멋스럽게 기른 헤어스타일까지. 남편이 4B연필이라면 당신은 선이 더 굵은 목탄 스케치 같았어요.” (p.27)


  사실 얼굴 이식이라는 소재는 그것이 현실 세계의 것이어서 낯설었을 것인데, 영화로는 오우삼의 <페이스 오프>가 1997년에 발표됨으로써 너무 익숙한 것으로 만든 지 오래이다. 그리고 김경욱은 우리나라 작가 중 가장 먼저 ’영화적 상상력‘이라는 문구를 사용하도록 만든 작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무모하다기보다는 너무 자연스러운 도전에 가깝다고 보인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거 알아요? 여학교 여자들은 대밭의 대나무들 같아요. 선생까지 포함해서. 한 그루도 빠짐없이 뿌리를 공유하고 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속속들이 영향을 주고받죠. 몇십 년, 몇백 년만에 한 번 일제히 꽃 피우고 한꺼번에 말라죽을 정도로.” (pp.61~62)


  여하튼 그렇게 소설은 바로 그 신문 기사의 내용처럼 죽는 순간 피부를 다른 이에게 기증한 남편, 그리고 남편의 피부를 이식받은 남자와 만나는 아내라는 설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나름의 미스터리를 덧붙이는데, 그래서 독자는 여자가 죽은 남편의 비밀번호를 찾아내기 위해, 경찰이 놓치고 있던 남편의 사고 당시 사라진 동승자를 찾아내기 위해 애를 쓰는 이유를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짐작하도록 내몰린다. 


  『“아바 좋아해요?”

  “두 번째로.”

  “첫 번째는요?”

  “아직 없어요.”

  “그런 말이 어딨어요.”

  “첫 번째가 남이 있다고생각하면 덜 쓸쓸하거든요.”』 (p.77)


  (번외로... 소설을 읽다가 느닷없는 과거로 소환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문답을 읽을 때였는데, 너무 옛스러웠다. 오래전, 그러니까 젊은 작가로 분류되던 시절의 작가가 사용했을 법한 아스라한 문답법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다시 등장하니 누추해 보였다. 이러한 재사용이 앤틱하게 느껴지기에는 그 과거가 또 생각만큼 멀지도 않고...)  


  “당신이라는 빛의 시발점, 당신이라는 어둠의 기원. 생일이 그날일 줄은. 사고가 난 그날, 남편 휴대폰을 지키던 비밀번호. 짓궂은 신의 질 나쁜 농담일까. 휴대폰 암호가 말도 안 되게 풀리던 순간처럼 모든 것이 정지해버렸죠. 남편에 대해 꼬치꼬치 묻던 당신, 남편을 닮으려 애쓰던 당신, 남편이 몰던 차와 같은 모델을 끌고 나타난 당신. 어지럽게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줄줄이 맞물리는 느낌. 타로 점집에서 남편 생일을 대던 장면 역시.” (p.126)


  그래서 (이미 영화로 나왔음에도) 현실 세계에서는 희소한 소재의 특이성이나 그 특이성을 더욱 극단으로 밀고 나가기 위한 미스터리가 조화로왔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라고 답할 수밖에 없겠다. 자동기술처럼 이야기는 척척 진행되고 있지만 작가가 노리고 있는 것만큼 심각하게 몰입하거나, 반전에 놀라 입을 크게 벌리고 있기에는 미흡하였다. 현실이 된 미래를 (너무) 가까운 과거처럼 만들고 있다.



김경욱 / 거울 보는 남자 / 현대문학 / 163쪽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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