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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69》

위악적인 문장조차 빛나게 만드는 몇 개의 젊은 슬로건...

by 우주에부는바람

*1998년 9월 22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작가의 엔터테인먼트 기질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먼저 그 무네라니... 내 어디서 이런 고귀하고, 사람의 심금을 마구 쥐어뜯듯이 울리며, 장님이라도 눈을 번뜩 뜨게 만들 선한 문체를 다시 보겠는가, 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고, 다만 요상하고, 새롭고, 그래서 열일곱이라는 주인공의 나이에 걸맞고, 또 그래서 그 나이에 걸맞지 않아도 보이는 문체를 작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런 문장은 수시로 등장하지만, 몇 개만 예를 든다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의 성적인 끝없이 하강해 갔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부모의 이혼, 동생의 갑작스러운 자살, 나 자신이 니체에 경도했다는 것, 할머니가 불치의 병에 걸렸다는 것, 때문이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냥 공부가 싫었을 뿐이다."


라거나,


"데이코, 후미요라는 <여공애사>에 등장하는 이름을 가진 여하갱들과 우리들은, 엘도리시 클리버와 다니엘 콘반디와 프란츠 파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전후 일본의 천황제의 유사점을 지적하며, 아나키즘의 본질이 볼리비아의 게바라에 잘 나타나 있다는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눴다,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나는 비스킷을 먹으면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에이프릴 컴 쉬 윌>을 기타 반주에 맞춰 불렀고, 처녀성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여고생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가를 역설하고, 오디키와 나리시카가 북고에서도 알아주는 열등생으로 선생까지 두 손을 들고 만 사나이들임을 가르쳐 주었다......"


라고 하는 식의 문장들...


주인공인 야자키와 아다마, 이와세는 이제 막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젊은이들. 이들은 제 앞에 놓은 삶의 그 권태롭고 형식적이고 위선적이만 한 흐름을 못참아 즐겁고 자유로우며 위악적으로 자신들을 바꿔 놓으려 안간힘 쓴다. 하지만 이들의 안간힘을 보면서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음, 지겹지 않으니까, 제 삶의 지겨움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자들이 수두룩한 마당에 지겹지 않게 사고하고, 지겹지 않게 살아가고, 지겹지 않도록 세상을 바꾸려 노력한다는 사실, 설령 그것이 하늘 향해 뱉은 침이 제 얼굴로 떨어지는 것이라도, 그것이 마땅히 지겹지 않기 때문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하나의 슬로건인 '상상력은 권력을 쟁취한다'와 작가의 후기에 실려 있는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이다'라는 슬러건... 위악적인 문장 쓰기와 이 멋진 슬러건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소설이다.



무라카미 류 / 양억관 역 / 69 SIXTY NINE / 예문 / 252쪽 / 1996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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