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 중년의 로맨스는 트라우마 처녀의 서슬퍼런 난도질로 변질되고 마니
*1998년 8월 1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아오야마는 야마사키 아사미의 어떠한 면에 집중하여 그런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일까... 요시가와는 야마사키 아사미의 어떠한 면에 치중하여 그녀가 위기의 여자라는 직감을 갖게 된 것일까... 무라카미 류의 <오디션>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이후 가장 읽을만한 그의 작품이다.
요시키라는 아내가 죽은 후 일말의 상심 상태에 빠져 있던 아오야마는 아들 시게히코와 함께 있는 시간을 가능한 한 많이 만드는 것과 독일에서 세계적인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를 초청 (그 여성 연주가는 상업적인 공연 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과제를 통해 그 상태에서 빠져 나왔고, 그로부터 또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아오야마는 시게히코에게서 재혼이라도 하는 게 어떻냐는 물음을 받게 되고, 친구 요시가와의 계획에 따라 영화 배우 오디션이라는 형시을 통해 자신의 상대를 찾게 된다. 아오야마는 야마사키 아사미의 자기 소개를 읽는 순간 이미 "... 그것은 조금 오버일지도 모릅니다만,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했다니다." 라는 문장에 마음을 빼앗기고 면접을 보는 순간에도 한 눈에 반해버린다.
그 이후의 과정은 중년의 남자가 품게 되는, 하지만 중년답지 않은 격정의 로맨스이다. 여기까지 읽게 되면 그간 무라카미 류가 보여준 여타의 소설적 행보에서 너무 멀어져 있어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보여지는 역전은 어쩔 수 없이 무라카미 류로군 하는 안도로 바뀐다. 결국 야마사키 아사미는 어린 시절 양부에게서 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자신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이 남자의 발목을 절단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아들 시게히코에 의해 목숨을 건진 아오야마는 목이 달아나면서도 아사미가 거짓말쟁이라고 중얼거리고, 무슨 말이냐는 아들의 물음에 "그냥 아무것도 아냐"라고 대답한다.
작중의 아사미는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을 저지른다. 아오야마와 시게히코가 아내와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오랜 세월에 걸쳐 떨쳐낸 다음의 일이다. 작가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언제나처럼 부정확하다. 현대인의 정신적 외상을 말하려 한 것인지, 심심치 않게 불거진다는 일본의 근친상간적 부녀 관계에 대한 소고인지, 이도저도 아니면 중년의 로맨스가 가지는 불안한 요소를 보여주려 한 것인지...
하지만 무라카미 류의 작품을 읽는 동안에는 이런 거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저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들의 조합,전혀 상응하지 못하는 단어들을 조합하면서도 읽는 사람을 한껏 고양시키는 그의 문장에 몰두할 뿐이다. 탁월한 서사적 구조가 아니라 일상의 빗나간 부분들, 바로 그러한 지점들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의 문장에 넋을 잃고마는 것이다.
무라카미 류 / 권남희 역 / 오디션 / 무당미디어 / 224쪽 / 1998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