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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코타로 《SOS 원숭이》

현대적인 문명병을 앓는 중에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선한 본성...

by 우주에부는바람

뭔가 환타지스럽다거나 의학 미스터리와 관련이 있다거나 하는 선입견을 가졌지만 실제 소설은 이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야말로 직관적인 제목이라고나 할까. 그러니까 소설은 SOS를 보내는 사람 혹은 그러한 사람의 요청에 눈 감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자, 이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보완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원숭이, 라기보다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손오공(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 창밖 도로를 보니 건너편에서 빨간 등을 회전시키며 구급차가 다가온다. ‘삐뽀삐뽀’라는 의성어가 앞서 존재하고, 거기서 소리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런 의구심이 들 만큼 정말로 삐뽀삐뽀 하는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사실 최근 들어 일본 소설 읽기가 조금 시들해졌는데, 바로 위와 같은 문장들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선해보였던 저런 문장들이 이제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이 문장에서도 배어나오는 듯한, 그렇지만 다시 생각하면 문장 안에 불필요한 수고를 하는 듯한 제스처가 지겨워진 탓이다. (어쩌면 일본어가 가지는 특성일 수도 있겠으나, 일본어를 잘 모르니 패스...)


소설은 두 개의 큰 가닥으로 진행이 된다. 하나의 가닥은 오래 전 한 동네에 살았던 헨미 누나로부터 히키고모리가 된 아들 마코토군과 만나 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 엔도 지로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닥은 잘못된 주식 발주라는 사건의 원인을 분석하는 프로그램 품질 관리자인 이가라시 마코토가 등장하는 원숭이의 이야기이다. 이 두 가닥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진행되고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인다.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하지만 내 이야기 속의 마사토 군이 자신과 한 동네에 사는 이가라시 마코토를 언급하는 순간, 내 이야기와 평행선을 달리던 원숭이의 이야기는 급작스럽게 만난다. 그리고 지금까지 원숭이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던 이가라시 마코토와는 조금 변형된 형태의 진짜 이가라시 마코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선악은, 옳고 그름은 명확한 게 아니다. 완벽하게 악한 인간도 존재하지 않지만 완벽하게 선한 인간도 없다. 인간에게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선한 힘이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사악한 힘이 드러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이가라시 마코토의 이야기 속에서 폐쇄적인 히키고모리인 마사토군은 다른 사람의 SOS 신호에 무감할 수 없는, 무감한 자기 자신에게 폭력이라도 좋으니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소년이 된다. 이가라시 마코토 또한 철두철미한 인과 관계의 파악자가 아니라 모든 상황을 이야기로 만들어 상상함으로써 좀더 유연한 자세를 갖는 인물이 된다.


“악마 퇴치는 나름 수요가 있어서 나도 몇 번 의뢰를 받았어. 전부 잘됐다고 할 순 없지만 효과적인 케이스도 있었다고 생각해. 하지만 요즘은 휴업 중이야. 물론 누군가 곤경에 처해 있고 내가 도움이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지만,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내 마음 자체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어떤 사람이 가르쳐준 건데, 인간에게는 메시아 콤플렉스라는 게 있대.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는 집착인데, 그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싶은 약한 마음에서 생겨나는 거라고.”


흥미진진하면서도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인간들의 선한 마음을 향한 희망을 노래하는 소설이랄까. 현대적인 문명병이라 할 수 있는 히키고모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러한 사회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춘다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라지지 않는 인간 본성의 선한 면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고 봐야 하겠다. 이 또한 일본 작가들 특유의 계몽적 기질과 맞닿아 있어 지루하지만, 손오공이라는 고전의 내용을 차용한다거나 평행하는 두 이야기를 어느 순간 접착시켜버리는 형식은 신선해 보인다.



이사카 코타로 / 민경욱 역 / SOS 원숭이 (SOSの猿) / 랜덤하우스코리아 / 400쪽 / 2010 (2009)



ps. 소설은 만화가 이가라시 다이스케와의 공동 기획으로 시작된 것이고,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되었으며, 책이 출간된 다음 해에에는 <SARU>라는 제목으로 만화로도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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