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한 지적 호기심 해결에 적극적인 대중화된 철학적 사랑학 개론서.
*1997년 9월 20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사랑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려 노력한 철학적 사랑학 개론서라 부를만하다. 전반부를 읽을 때와 후반부를 읽을 때의 서로 다른 심정 탓에 전반부는 진지하고 재미있게, 후반부는 무성의하고 재미없게 읽었다. 어찌되었든 작가가 가지는 해박한 감성의 질료들과 이 질료들을 적절히 배합하는 기술에는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사랑을 하고 있거나, 이미 사랑을 끝낸 사람들에게 잠시 짬을 내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해야 할까. 소설의 내용들은 사랑의 어떤 한 국면이든 연관시켜 새롭게 생각하도록 도울 수 있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다. 간간히 마음에 척 달라붙던 몇 대목을 옮겨보자면 이렇다.
"역사적인 접근에는 심각한 양면성이 숨어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모든 것들을 보존하려는 욕구 - 백과사전식 박식함 - 와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하려는 욕구 - 혁명 - 이다."
"학문적 피학증에는, 진리는 얻기 힘든 보물이고 쉽게 읽혀지거나 습득되는 것은 바로 그 이유로 틀림없이 경박하고 조리가 서지 않는 것이라는 형이상학적 편견이 반영되어 있다. 진리는 올라야 할 산과 같아서 정상의 길은 위험하고 어두우며 까다로워야 한다. 도서관 열람실의 혹독한 불빛 아래 학문의 좌우명은 이렇게 씌어 있다. '힘든 책일수록 진리에 가까우리라'... 이것을 인간관계에 적용시킨다면, 까다로운 연인이 술직 명료하고 예측가능하며 제시간에 전화를 걸어주는 연인보다 어떻게든 더 가치있다는 개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종교적 낭만적 사고체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런 유형의 손쉬운 사랑은 비난이나 회피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들은, 훌륭한 문체로 빛나는 산문이 교육 받은 20세 청년에게 이해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속에 담긴 사상을 조롱하고 마는 학자들처럼 행동한다."
"유쾌함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것들을 재미있다고 여기지만 단 하나 그들이 즐겁게 보아 넘길 수 없는 대상이 있다면 바로 그들 자신이다."
"사랑은 타인의 자질보다는 그 자질이 자신의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 다시 말해 우리에게 적절한 자기 이미지를 반사시켜 주는 상대방의 능력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ps. 97년도 한뜻출판사에서 출간당시의 책 제목은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이었으나 이후 은행나무에서 재출간이 되면서 책 제목이 <우리는 사랑일까>로 바꾸었다.
알랭 드 보통 / 김한영 역 /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 (The Romantic Movement) / 한뜻출판사 / 1997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