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욕망의 무기력함을 향한 한강의 절절한 아우라...
소설 속에 드러나는 식물성, 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는 이응준이다. 하지만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이응준의 식물성은 점점 탐미적으로 그리고 퇴폐적으로 바뀌고 있는 중인 것으로 기억된다. 동물성의 비대화로 추구된 퇴폐나 탐미는 어찌 보면 구시대의 유물일런지도 모른다. 이제 이 시대는, 모름지기 모든 기름진 것들로부터는 더 이상 퇴폐나 탐미의 새로운 소스를 제공받지 못한다. 대신 그 자리를 식물들이 차지하는 것만 같다. 한강의 이번 연작 소설들에서도 난 그러한 뉘앙스를 빨아들인다. 동물성은 식물성의 도움을 받아서만 이 시대를 오롯하게 퇴폐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채식주의자」.
“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신선함이나 재치, 세련된 면을 찾아볼 수 없는 그녀의 무난한 성격이 나에게는 편안했다. 굳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박식한 척 할 필요가 없었고, 약속시간에 늦을까봐 허둥대지 않아도 되었으며, 패션 카탈로그에 나오는 남자들과 스스르를 비교해 위축될 까닭도 없었다...”
영혜와 결혼한 나는 굉장히 무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내에게 크게 기꺼워하지도 않지만 크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러나 어느 날 아내가 완전한 채식을 선언하면서 모든 것이 어긋나버린다. 그때까지 잘도 먹던 아내의 채식 선언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 그저 그녀가 꾼 꿈이라는 점도 의아할 따름이다. 게다가 아내는 계속되는 악몽으로 잠도 이루지 못한다.
“다섯 바퀴째 돌자 개는 입에 거품을 물고 있어. 줄에 걸린 목에서 피가 흘러. 목이 아파 낑낑대며, 개는 질질 끌리며 달려. 여섯 바퀴째. 개는 입으로 검붉은 피를 토해. 목에서도, 입에서도 피가 흘러. 거품 섞인 피, 번쩍이는 두 눈을 나는 꼿꼿이 서서 지켜봐. 일곱 바퀴째 나타날 녀석을 기다리고 있을 때, 축 늘어진 녀석을 오토바이 뒤에 실은 아버지가 보여. 녀석의 덜렁거리는 네 다리, 눈꺼풀이 열린, 피가 고인 눈을 나는 보고 있어.”
그리고 아내의 극단적인 채식주의는 결국 처가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폭발하고 만다. 참을성 없는 장인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 딸에게 억지로 고기를 먹이려는 순간, 갑자기 칼을 들어 자신의 손목을 그녀가 그어버린 순간, 피 흘리는 처제를 그가 들쳐업고 병원으로 향하는 순간, 모든 일은 그 폭발로 마무리되는 듯 하지만 결국 더욱 큰 폭발의 시발점이 되고 만다.
「몽고반점」.
채식주의자인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아내에게 들은 이후 비디오 아티스트인 나는 그러한 처제를 소재로 하는 작품을 찍을 결심을 하지만, 그것이 쉽지는 않다. 자신의 몸에 피를 묻혀가며 자해한 처제를 업고 뛰는 순간을 잊지 못할 정도로 그는,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수긍할 수도 없고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고 갈지도 모를, 자신이 지향하는 작품 행위를 향해 온 정신이 몰두해 있다.
“...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분명한 몽고반점이었다. 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채식주의자」의 나와 동서 사이인 나 또한 아내와의 결혼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으되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며 결혼 생활을 유지해왔다. 그럼에도 한번 불꽃처럼 점화되어버린 나의 처제를 향한 욕망(그것이 어떤 것이든) 쉽사리 제어되지 않고 결국 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당한 이후 혼자 살고 있는 처제의 나신을 캠코더 앞으로 불러낸다. 자신의 육신이 가진 동물성보다 자신의 육신에 그려진 식물에 훨씬 가까운 그녀, 그리고 그녀와의 교합을 위하여 나의 몸뚱이에 그려지는 또다른 꽃의 욕망은 결국 캠코더에 고스란히 담겨지지만...
「나무 불꽃」.
모든 육식을 거부하고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형부와 섹스를 하고 이제는 정신병동에 갇혀 지내는 영혜, 그리고 그러한 영혜를 지켜줄 수 있는 마지막 보호자가 되어버린 영혜의 언니인 나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자신의 여섯 살난 아이와 그러한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동생 영혜 때문에 어쨌든 살아가는 중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갔다. 등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 가게를 꾸려나갔다.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그리고 나는 이제 정신병원의 영혜가 탈출하여 숲의 한 가운데에서 나무처럼 서 있었다는 소식에, 육식 뿐만 아니라 모든 곡기를 끊으려 한다는 전갈에 다시금 병원을 찾아 영혜를 향하여 최후의 부탁을 하려고 한다. 하지만 물구나무를 선 채 자신의 가랑이로부터 줄기가 뻗어올라 하나의 나무가 된다는, 나무들은 그렇게 하늘을 향해 서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땅에 박은 채 있는 것이라고 말하는 영혜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이다.
“언니. ……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결국 링거액조차 거부하고 강제적인 음식 주입에 피를 토하는 영혜를 정신병원의 의사들은 거부하고, 나는 그러한 영혜를 구급차에 실은 채 서울의 다른 병원으로 향한다.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 살기를 거부하고, 식물의 삶을 숲 한 가운데 머리를 박은 채 하늘을 향해 가랑이 사이에서 줄기를 뻗어 올리는 하나의 나무로 살기를 바랄 뿐인 영혜와 함께...
“조용히, 그녀는 숨을 들이마신다. 활활 타오르는 도로변의 나무들을, 무수한 짐승들처럼 몸을 일으켜 일렁이는 초록빛의 불꽃들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아니,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그녀의 눈길은 어둡고 끈질기다.”
『채식주의자』는 2002년 겨울부터 2005년 여름까지 쓰여진 세 편의 소설을 모아놓은 연작 소설집이다. 수긍할 수 없는 일상의 비현실성으로 가득한 세 편의 소설은 그러나 감내하기 힘든 흡입력으로 독자를 휘두른다. 세 편의 소설 속에서 한 번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초지일관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영혜는 식물적이며 수동적이고, 그러한 영혜를 둘러싼 남편과 형부와 언니의 쇠락은 야만적이며 인간적이다. 우리들 삶의 이면에 감추어진 보다 근원적인 어두움은 그렇게 빛을 갈망하는 식물 혹은 식물과도 같은 그녀를 통하여 환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어찌할 수 없는 우리들의 환한 욕망은 그녀 영혜를 살리는 빛을 제공하는 대신 그 무기력함을 알릴 따름이다. 슬프고 무서운 소설들이다.
한강 / 채식주의자 / 창비 / 247쪽 / 2007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