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후련하게 풀리는 미스터리가 눈을 찌르는 듯한 묘사를 대신할 때...

by 우주에부는바람

“한 사람이, 자살한 동시에 자살하지 않은 것일 수는 없다... 모든 것을 버리는 동시에 버리지 않았을 수는 없다... 갓길 없는 미시령의 눈 쌓인 길에서, 벼랑의 안쪽과 바깥쪽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단 한순간, 둘 다를 택할 수는 없다... 주저할 수도, 얼버무릴 수도 없다...”


이야기의 중심축은 이렇다. 나 이정희는 어느 날 친구 서인주의 죽음을 겪는다. 하지만 그 죽음도 받아들이기 힘든 마당에 어느 날 나타난 미술평론가 강석원이라는 작자가 서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는 데에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서인주의 죽음을 자살로 만들고 박제화 하려는 강석원에 대항해야 한다는 사명을 갖게 된다. 그렇게 나는 서인주의 죽음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이다.


“과속으로 달리는 택시 차창 밖으로 모든 것이 뒤섞여 있다. 먹처럼 엎질러진 어둠. 그 사이로 희미하게 빛나는 가등들. 텅 빈 거리. 셔터를 내린 상점들. 얼어붙은 분수대. 거대한 납골당 같은 아파트 건물들. 소리 지르는 것 같은 날카로운 나뭇가지들.”


하지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외양을 택하고는 있되 한강 특유의 그 서늘하고 침침하면서도 바늘로 찌른 듯 명징한 통증을 간직한 문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 마치 눈에 보이는 듯 풀어 놓는 묘사와 그 묘사 사이사이에 뿌려 놓은 날카로운 그 어떤 것들의 흔적 또한 여전하다. 그러니 독자들은 한강의 소설을 읽는 동안 발밑을 찔리지 않기 위하여 조심조심 할 수밖에 없다.


“바람이 분다... 마른 나뭇가지들이 허공을 할퀸다. 긴 코트 차림의 여자들이 길고 곧은 머리칼을 나부끼며 종종걸음 친다. 어디선가 날아온 흰 전단지가 택시 앞유리의 와이퍼에 걸려 세차게 퍼덕거리다 찢기며 다시 날아간다.”


게다가 한강의 소설은 어딘지 묵직하다. 그러니까 같은 페이지 같은 분량의 소설을 읽었다고 해도 한강의 소설을 읽고 나면 훨씬 더 무거워진다. 한강의 소설은 훨씬 높은 밀도로 응축되어 있어서 같은 두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런 느낌은 도드라진 문체에서 뿜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을씨년스러운 캐릭터들의 말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이맘때의 어둠엔 혈관이 있는 것 같아... 파랗게 피가 번지는 것 같아.”


하지만 실상 한강의 다른 작품과 비교하였을 때는 그 응집의 느낌이 조금 덜하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지나치다 싶게 숨겨지고 있고, 그래서 그만큼 드러나 있기도 한 비의의 무엇인가는 소설의 중반을 넘어간 어느 시점에 갑자기 폭발하기 시작한다. 마지막 한 순간에 폭발되어야 할 것이 너무 일찍 폭발해버리니 그 순간 이후 소설은 주체할 수 없는 팽창으로 치닫는다.


“고래는, 상처가 나면 피가 멈추지 않는대. 작살을 맞으면, 워낙 커서 바로 죽지 않는다 해도, 계속 계속 피를 흘리면서 다니다가 나중에 죽는대. 이 세상 고래들은 전부 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병에 걸렸대.”


너무 일찍 작살에 맞은 고래가 남은 동안 피를 흘리며 대양을 떠돌듯이 한강의 소설 또한 그 묘사의 생명력을 잃고 설명의 단계로 접어든다. 미시령 고갯길의 미스터리는 후련하게 풀렸으되 그 후련함이 오히려 미진함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라고 해야 할까. 물론 여전히 동년배 작가들 중 가장 좋은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기는 하지만 한강은 미스터리를 어느정도 미스터리하게 남길 때 더욱 한강스럽게 보인다.



한강 / 바람이 분다, 가라 / 문학과지성사 / 390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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