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

몸의 허위의식과 인간의 텅빔에 관하여...

by 우주에부는바람

소설은 화자인 내가 등장하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그리고 액자소설로 조각가인 내가 등장하는 본편으로 나뉠 수 있겠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나는 하지만 그저 소설적인 장치로 등장하는 작가 자신의 분신,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없고, 그저 소설일 뿐이다, 라고 말하는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리고 소설의 본 줄기는 조각가인 장운형이 남긴 기록에 의존한다. (물론 그 기록이라는 것이 조각가가 그저 시간이 남아 또는 기록해야 할 것만 같아 하는 것으로는 너무 소설적이지만, 그건 별개로 치고.)


장운형이란 인물은 라이프 캐스팅(Lifecasting), 신체의 일부, 또는 전부를 대상으로 석고를 부어 떼내는 작업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조각가이다. 그는 과거 어렸을 때 손가락이 두 개 잘린 외삼촌으로부터, 아니 외삼촌의 그 손가락들로부터 영감을 받은 바 있으며, 이후 "...웃고 있는데도 마치 눈물에 번쩍거리고 있는 것 같은 그 두 눈은, 방금 차가운 연못에서 건진 까만 돌멩이들 같았다."라는 느낌을 받았던 L을 전시회장에서 만난 후 비대한 몸집의 L의 손, 그리고 그녀의 몸 전체를 대상으로 작품 세계를 만들어간다. 그 작업들이 얼추 끝난 후 L은 과도한 살빼기 작업에 들어가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장운형과 만난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바꾼 L은 요요 현상의 가혹함에 무너져가는 중이었고, 그런 그녀는 장운형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사라져버린다. 이후 장운형은 E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고, 그녀의 몸 전부를 석고로 뜨고, 다시 자신의 몸 일부를 그녀에 의해 뜨임 당하는 일련의 사건을 겪는다. 그리고 그와 E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글쎄, 소설은 뭐랄까... 몸과 그 몸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허위의식에 관한 이야기같다. 장운형의 외삼촌에 손가락에 대한 기억, L의 비대한 몸과 끊임없는 다이어트, 육손이로 태어나고 자라 한 손가락을 자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E. 이 모든 것들은 몸의 기형성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텅빔에 맞추어져 있다.


소설의 초반부에 "왜 내 삶의 가운데는 텅 비어 있는가."라는 문장이 화두로 작용하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난 외피로서의 몸과 그 몸이 간직한 기억, 그리고 그 몸의 외피를 석고로 떼어낸 작품들과 그 작품들이 간직하고 있는 몸의 기억. 이처럼 가면을 덧씌우고, 그 가면으로 편안하거나 불편하지만 결국엔 그 어느 것도 진짜이지 못하고, 진위를 가릴 수도 없는 소용돌이 같은 몸의 이야기.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 소설적 재미를 극대화시키고 있지는 못하지만 한강 특유의 조신한 문장 전개나 서먹하지만 한참 읽다보면 여유있게 감정을 이입할 여지를 드러내는 등장인물들은 부드러워서 소화해내기 좋다. 전경린의 소설이 보여주는 과도하게 감각적인 수식으로 치장된 문장, 에쿠니 가오리의 허위의식 가득한 등장인물들보다는 비교적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한강 / 그대의 차가운 손 / 문학과지성사 / 330쪽 / 2002 (2002)



ps. 혹시 껍데기와 껍질의 차이에 대해 국어시간에 배운 적이 있는 사람? 난 모르겠는데, 작중의 E는 이것을 잘도 기억해 설명해놓고 있다. 그게 괜스레 재밌고, 기록하고 싶어졌다. "껍데기는 조개나 게, 거북이처럼 단단한 걸 말해요. 하지만 껍질은 내용물에 완전히 엉겨 있죠. 사과나 배, 고양이와 개, 그리고 사람처럼." 그러니까 우리는 껍데기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아니라 엄밀히 말하자면 사과 껍질처럼 피부에 의해 둘둘 말려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 몸의 허위가 잘 벗겨지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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