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내 젊은 날의 숲》

탄생과 소멸 거듭되는 숲의 풍경 앞에서 움푹 패이고 마는 이 마음을 어찌

by 우주에부는바람

“... 멀리, 눈 쌓인 자등령에 아침햇살이 닿으면 잇달린 봉우리들은 솟아오르는 태양의 각도에 따라서 자줏빛에서 분홍빛으로, 분홍빛에서 선홍빛으로 바뀌었다. 바람이 능선을 훝을 때, 솟구치는 눈의 회오리 속에서도 분홍빛과 자줏빛의 눈가루들이 들끓었다. 들끓는 빛의 가루들을 몰아가는 회오리가 능선을 따라서 북방한계선을 건너갔다. 자등령이라는 이름의 붉은 자紫는 겨울 아침에 지어졌을 것이다.”


민통선 안에 위치한 수목원, 자등령을 끼고 수묵하게 들어 앉아 있는 그곳에서 계약직으로 세밀화를 그리는 일을 맡은 나의 젊은 날에는 습기가 가득하다. 그 습습함은 나무나 숲이 풍기는 청량함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다. 그 습습함에는 비리로 수감 중인 아버지의 허기진 호흡이 들어 있고, 밤이면 밤마다 핸드폰으로 호출을 해대는 엄마가 뿜어내는 갈증난 호흡이 들어 있다.


“여름의 숲은 크고 깊게 숨쉬었다. 나무들의 들숨은 땅속의 먼 뿌리 끝까지 닿았고 날숨은 온 산맥에서 출렁거렸다. 뜨거운 습기에 흔들려서 산맥의 사면은 살아 있는 짐승의 옆구리처럼 오르내렸고 나무들의 숨이 산의 숨에 포개졌다.”


소설 속 나의 숲은 나무의 숲과는 다르다. 탄생과 소멸이 한 그루에 모두 포섭되어 있는 나무로 가득한 숲이 자연이라면, ‘내 젊은 날의 숲’은 결국 자연 안에 깊숙하게 몸 담고 있어도 그 자연과 거리를 두고 있어 인공적이다. 나는 세밀화가가 되어 숲의 가장 작은 단위들을 살피고,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나무나 꽃을 그리지만 끊임없이 숲의 바깥으로부터 침범하는 상념들로 가득하다.


“세밀화는 개별적 생명의 현재성을 그리는 일이지. 그 안에 종족의 일반성이 들어 있거든. 그래서 수목원은 세밀화가 필요한 거야. 그게 원리나 개념으로는 파악이 안 되잖아...”


숲에는 숲의 인간들이 또 가득하여서 ‘꽃의 현재보다도, 꽃의 색의 근원을 규명’하는 연구를 하는 안요한 실장이 있고, 적군과 아군을 규명하기 힘든 백골들의 잔해를 발구하는 김민수 중위가 있다. 자신이 가르치던 원생들에게 죽음의 모습을 보여야 했던 미술학원 원장도 있고, 자폐증에 시달리는 안요한 실장의 서글픈 아들이 있고, 살아 있는 군인이 있고 죽어 있는 군인이 있다.


“... 죽은 자는 자신이 죽은 것을 알지 못할 것이고 죽은 자가 남긴 한 토막의 백골조차도 살아남은 사람의 마음속으로 밀고 들어오는 것이므로 죽은 자의 슬픔이나 고통보다는 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더 클 것이고, 살아남은 자가 더 가엾을 것이다...”


나는 숲에서 숲을 바라보면서 숲에 둘러싸인 채 인간이라는 제 종족의 여러 일반성 안에 흡착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들여다보는 것의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서성대는 소설 속의 나를, 소설 밖의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듯 바라본다. 김훈에게는 그런 힘이 있다. 쉽사리 소설 속의 인물에게 등을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 그의 문장을 따라 나의 등은 자꾸 소설 속 나의 심상에 달라 붙고, 절개될 수 없는 이 흡착이 나를 습습하게 만든다.


“꽃눈을 잘라보니까, 그 안에 뱃속에 점지된 태아와도 같은 꽃잎이 숫자와 형태를 겨우, 그러나 모두 갖추고 쟁여져 있었다. 꽃이 피지 않아도, 꽃눈 속에서, 개화를 예비하는 꽃은 이미 피어 있었는데, 아직 햇빛에 닿지 않은 어린 꽃잎들은 물기에 젖어 있었다.”


김훈의 다른 소설에 비한다면 소품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역사적 스케일이 있는 것도 아니며 당대의 중심으로 파고 드는 타입도 아니다. 세밀화가인 주인공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러 점 풍경화를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그것에서 작가가 말하는 ‘사랑과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것은 모두 내 탓이다. 탄생과 소멸이 가득한 숲을 바라보면서 왜 내 마음은 움푹 패일 뿐인 것인지 모르겠다.



김훈 / 내 젊은 날의 숲 / 문학동네 / 343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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