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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Oct 14. 2024

박연준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하소연을 하는 부부와 하소연을 듣는 부부의 마음...

  지금까지 내가, 가장 나중에 좋아하고 있는 중인 시인은 박연준과 진은영이다. 두 시인이 가장 최근에 낸 산문집이 박연준의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그리고 진은영의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다.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이 8월에,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이 9월에 출간되었다.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을 금세 읽었고, 지금은 토니 모리슨의 《가장 푸른 눈》을 읽고 있고,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은 곧 읽을 예정이다.


  “우리는 함께 그루잠을 잔다. 깨었다가 다시 드는 잠, 하루 중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다. ’그루잠‘이라니. 말의 어여쁨을 생각한다. 새벽에 작은 잠 한그루를 심는 일 같다. 우리는 기회를 한번 더 얻은 것처럼 안도한 표정으로 잠든다. 손끝으로 고양이의 체온, 따뜻한 털의 감촉을 느끼면서.” (p.14)


  언어를 보다 첨예하게 다루는 시인이 제공하는 산문을 읽는 일은 그것대로 즐겁다. ’그루잠‘과 같은 따사로운 단어를 발견하면 더욱 그렇다. 시인의 집에 고양이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고, 나에게도 고양이가 있다. 나의 그루잠은, 내 옆에서 아내의 베개를 탈취하여 자고 있는 고양이 들녘이의 엉덩이와 베개 사이로 손을 넣은 채로 이루어진다. 지금 같은 간절기에 그 손의 기분은 최고이다.


  “... 당신은 언제 행복한 감정이 드느냐고 누가 물으면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했는데요. ’행복이란 무엇인가‘ 근원적인 질문이나 곱씹으며 머리를 긁적이기만 했는데 이제 알겠어요. 행복은 소풍 나가서 풍경을 구경하며 반쯤 졸다가, 나를 잊어버리는 상태예요.” (p.45)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번 가을은, 무더웠던 여름 탓에 더욱 반갑다. 아내와 나는 주말마다 소풍처럼 한강 라이딩을 다닌다. 아직 실력이 흡족하지 못하여 스피드를 내지 못하니 그야말로 소풍 같다. 지난 주에는 잠실대교 아래 수중보 근처에 한동안 머물렀다. 아이가 없는 우리 부부는 두 아이의 문제로 하소연을 하는 부부가 쳐놓은 그늘막 아래서 세 시간 정도 수다를 떨었다. 거기서 누구도 불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편지에는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이 실린다. 그냥 마음이 아니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마음을 보내려는 이의 의지가 담긴다. 편지에는 마음의 순전한 힘이 깃들어 있다.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이 팬레터를 보내는 마음을 떠올려보라. 열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선 편지가 최선이고, 선물은 편지(마음)를 건네기 위한 빌미일지도 모른다.” (pp.84~85)


  나는 거기에서 상대의 마음을 모르지 않는 것 같았고, 그 모르지 않는 마음을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무척이나 귀를 기울였다. 가늠할 수는 있지만 절대 나의 것이 될 수는 없는 고민 앞에서는 무작정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부부의 성정의 합에서 가장 나쁜 값과 가장 좋은 값, 아마 아이들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성장을 하는 중일 터이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는 것이 내 생각이기는 하고...


  “모르는 사람은 발레를 무대에서 나풀거리며 추는 가벼운 춤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마치 시가 설탕처럼 달고 고운 언어로 이루어진 장르라고 오해하는 것과 같다. 발레는 힘이 없으면 어떤 동작도 소화할 수 없는 고강도, 고난도의 춤이다. 똑바로 서 있는 데조차 많은 힘이 필요하다. 코어가 제대로 잡히지 않으면 걷고 뛰고 점프할 수 없다. 힘이 들지 않는 것처럼 보이려면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p.108)


  시인의 산문을 읽다 보면 저절로 써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함부로 쓴 것 아니냐 깎아 내리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꽤나 부럽다고 하는 편이 맞다. 그러니까 시인의 산문은 눈에 띄는 여과의 장치를 설치하고 그 장치를 통과하며 쏟아지는 글이 아니다. 시인에게는 여과의 장치가 이미 내재되어 있고, 따라서 별도의 기계적인 통과의 과정이 없어도 자연스럽게 쏟아진다. 많은 글들이 그렇게 보인다.


박연준 / 마음을 보내려는 마음 / 창비 / 214쪽 /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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