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장 아래에서 치뤄지는 세계문화전쟁의 최전선을 확인하라...
뭔가 좀 재미있는 읽을거리, 그리고 강준만 교수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여다보는 기회 등을 노렸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출판저널리즘의 이름으로 <인물과사상>이라는 책자를 꽤 오랜 시간 출간하였던 인물에 대해 가지고 있던 호기심은 책을 읽는 동안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만다. 세계문화전쟁에 포커스를 맞춘 강준만 고유의 시각이 궁금하였으나, 책을 통해서는 세계문화전쟁에 포커스를 맞춘 무수히 많은 서적과 잡지의 글들을 채집하고 정리하는 강준만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채집한 내용들 그리고 정리한 내용들은 의미 없지 않다.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누리고 있거나 누리고 있다고 여기는 문화, 그 중에서도 세계와 소통하고 연계되는 문화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몇몇 시선에 대해서는 충분하게 소개되고 있다. 책은 모두 열두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대부분은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대중문화(와 그것을 실어나르는 미디어) 그리고 현존하는 가장 파괴력 있는 플랫폼인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장은 <왜 미국 대중문화는 세계를 휩쓰나? (미국 대중문화 패권의 6대 요인)> 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며, 여기에서 강준만은 ‘세계 제1의 국력에서 비롯된 규모의 경제’, ‘문화제국주의의 정치경제적 효용을 염두에 둔 강력한 국가적 지원’, ‘각 부문 간 시너지 효과’, ‘미국의 프런티어․ 이민문화의 장점’, ‘대중문하의 자본화 심화로 인한 철두철미한 상업화’, ‘영어제국주의’라는 여섯 가지 요소를 미국 대중문화 파급력의 원천으로 꼽는다.
“... 사회학자 박치현은 뉴요커나 파리지앵 같은 본격적인 ‘취향 좌파’가 우리 사회에 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고품질도 고품질이지만 어떤 점에선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한국의 ‘세련된’ 시청자들에게 미드가 인기를 누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미드를 즐기기 어려운 시청자들은 막드를 즐기면 된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막드’는 ‘미드’에 대한 민족주의적 저항일까?”
두 번째 장은 <왜 ‘MTV’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인가? (전 세계적인 ‘MTV 세대’의 등장)>로 미국의 케이블 채널인 ‘MTV’가 전세계로 확산되는 모양을 보여주고, 세 번째 장인 <왜 ‘미드 열풍’이 부는가? (‘뉴욕 라이프스타일 배우기’ 강좌가 개설되는 나라)>에서는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우리나라 시청자들이 어떠한 이유로 미드란 애칭으로 불리우는 미국의 드라마들을 수용하는 방식을 다룬다.
“... 종교는 공포에서 비롯된다. 현대인은 늘 남에게 뒤처질지 모른다는 공포감과 연결돼 있다. 미래학과 더불어 디지터 테크놀로지가 종교적 성격을 갖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변화가 속도전쟁의 부산물이 된 세상에서 성공과 치료는 사실상 종교적 개념이다. 잡스교의 수명은 짧을망정 앞으로 수많은 잡스들이 계속 등장하게 돼 있다.”
네 번째 장인 <왜 스티브 잡스는 ‘교주’가 됐나?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종교적 성격)> 에서는 스티브 잡스에 대해 열광하는 원인을 살피고, 다섯 번째 장인 <‘구글리제이션’은 축복인가? (구글이 선도하는 인터넷 정보제국)>에서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검색엔진이 지구를 장악할 것이다”라는 선언을 거론하며 위험천만한 현재의 인터넷 정보제국의 실체를 보여주려 애쓴다.
“... 인터넷 소셜 미디어가 주목받는 것은 전파 속도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용자 5000만 명을 넘는 데 걸린 시간을 비교하면 그 효과는 더 확인된다. 라디오가 38년, 텔레비전이 13년, 인터넷이 4년 걸린 바년 트위터는 2년에 불과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SNS의 대표 격인 페이스북은 이용자 1억 명 돌파에 9개월이 소요됐다...” - 송경재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여섯 번째 장인 <위키피디아의 명암은 무엇인가? (위키피디아의 ‘미국중심주의’와 ‘대중지성’ 논쟁)>에서는 위피키디아로 대변되는 대중지성이라는 것의 허와 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미국이 있음을 지적하며 일곱 번째 장인 <왜 SNS 경쟁이 치열한가? (인맥사회의 사회자본 축적 열풍)>에서는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가 지향하는 바를 살핀다.
“집단극화는 어떤 문제에 관한 집단토의에 참가한 후의 구성원들이 토의 전보다 더 모험적인 의사결정을 지지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러한 집단극화가 일어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집단토의 속에서의 주장들을 들음으로써 새로운 정보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들이 구성원들의 시초의 입장을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고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입장에 반대하는 이유들보다 찬성하는 이유들을 더 많이 듣게 된다. 집단토의는 적극적으로 스스로 개입하도록 고무시키며 사람들에게 자기의 당초 견해가 옳다는 것을 납득시키고 따라서 보다 더 극단적 의견들이 나오게 된다.”
여덟 번째 장인 <왜 CNN이 세계뉴스전쟁을 일으키나? (글로벌 ‘이미지전쟁’의 정치화)>에서는 CNN 이후 불기 시작하는 전세계적인 뉴스 미디어들의 전쟁을 살펴보고, 아홉 번째 장인 <인터넷은 신민족주의의 주범인가? (인터넷 ‘집단극화’의 정치학)>에서는 ‘집단극화’라는 개념을 통하여 어떻게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공간이 오프라인 공간보다 더욱 논쟁적이고 극단적일 수밖에 없는지를 들여다본다.
<... 획일성과 다양성 문제에 대해 김영명은 “동양에는 서양과 동양이 공존하지만 서양에는 서양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왜 사람들은 서양이 동양보다, 미국이 한국보다 더 다양하다고 할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의 답은 한국은 ‘문명 차원’에선 다양하지만 '일상 차원‘에선 획일적이라는 것이다.>
열 번째 장인 <왜 ‘국가 브랜드’ 경쟁이 치열한가? (국가 홍보 전략으로서의 문화전쟁)>에서는 이미 브랜드화 되고 있는 국가, 그리고 그 국가를 홍보하기 위하여 활용되고 있는 문화를 다루고, 열한 번째 장인 <문화다양성은 가능한가?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의 정치학)>에서는 문화다양성에 대하여 가지는 각국의 입장, 특히 미국과 그 이외의 국가들의 입장 사이의 간극에 대해 피력한다.
“... 한류는 한국 대중문화의 질적인 우수성이나 문화적 고유성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기보다는 급격한 산업자본주의적 발전을 겪은 아시아 사회 내부의 다양한 갈등들 - 성별 정체성인 세대 간 의사소통의 불능성 등 - 을 가장 세속적인 자본주의적 물적 욕망으로 포장해내는 한국 대중문화의 ‘능력’ 덕분에 생긴 것...” - 김현미 한겨레 21 2001년 10월 30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두 번째 장인 <한류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류 14년의 전개 과정 일지)>에서는 전세계적인 차원의 (문화적인) 팍스 아메리카나를 닮아 있다고 볼 수 있는 (혹은 닮고 싶어 한다고 볼 수 있는) 아시아에서의 한류를 살핀다. 한류는 어떻게, 가 아니라 한류는 왜 가능했는지에 초점을 맞춘 내용은 바로 지금 현재진형중이어서 흥미롭다.
“... 한국은 세계 50대 교회 중 제1위르 포함하여 23개를 갖고 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겐 음주, 섹스, 도박, 스포츠가 있다. 음주, 섹스, 도박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스포츠는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지만 스포츠 국가주의에 열광하는 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영화는 히트만 쳤다 하면 1000만 명의 관객을 끌어들인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비롯한 오락 프로그램은 세게에서 가장 재미있다. 한국은 인터넷강국이되 인터넷이 주로 오락용으로 소비된다는 점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등이다. 한국은 게임강국이며, 비보이 문화의 새로운 종주국으로 떠올랐다. 오락 기능이 강한 각종 방(房) 문화의 발달도 세계 1위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한국은 ‘오락 공화국’이다! 냉소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자는 뜻이다. 한류 열풍은 오락 공화국의 역량을 보여준 사건이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도, 민주주의를 박탈당한 군사독재 정권 치하에서도, 오락문화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으며 내내 번성했다. 한국인이야말로 이른바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이다.”
강준만 / 세계문화전쟁 : 팍스 아메리카나와 글로벌 미디어 / 인물과사상사 / 415쪽 / 2010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