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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Oct 17. 2024

최성각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흥청망청한 하나의 삶을 향한 고집스러워 보이는 생태주의자의 일침...

  고기를 좋아하고, 자동차로 출퇴근을 하고, 분리수거도 대충대충 하고, 식당에서 반찬도 잔뜩 남기는 나는 일단 환경 운동가나 생태주의자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그들이 살고 있는 지구와 내가 살고 있는 지구가 다르지 않은데, 온통 그들의 어깨 위에만 짐을 지운 채 나 혼자 흥청망청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탓이다. 


  “‘세계 인구의 1%가 전체 부의 40%를, 2%가 전체 부의 반 이상을 소유하고 있으며, 전 세계 인구 중 빈곤층의 절반은 전 세계 총생산의 1%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2006년 기준, UN대학)는 통계가 그것이다. 이런 문투로 소개되는 통계는 그 내용의 이해를 위해 차갑고 냉소적인 머리보다는 상상력과 온기가 있는 가슴이 필요한데, 바로 그 가슴 때문에 이런 류의 통계를 접할 때마다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위기 의식을 활자화된 형태로 읽기는 하되, 그 읽기가 가슴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뉘우친다. 나보다 더 가진 사람 그래서 더 많이 소비하는 삶의 행태를 향하여 혀를 차면서도 그 반대편의 삶에 대해서는 눈 감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소비 위주의 삶에 나 또한 편승하고 있음을 혹은 그러한 삶에 편승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는 점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여기에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펄프 낭비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소설책 나부랭이나 열심히 사서 읽고 있으니 이 또한 창피한 노릇이기도 하다. 책을 고르는 안목은 늘 부족하여 사고 나서 혹은 읽고 나서 후회하는 책들 천지이니, 돈은 돈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허투루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삶에서 배우 수 있었던 귀중한 것들의 가치를 어렴풋이 느끼긴 했으나 조금이라도 그 시늉을 내기는커녕 쓸데없는 일들에 허송세월을 하다가 어느덧 오십이 넘어버렸다. 하지만 다행히 아직은 좋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른 나이에 파묻히게 된 축복은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사십대가 되면 어느 한적한 바닷가 오두막에서, 오십대가 되면 어느 야트막한 동산 아래 어디쯤에서 살고 싶다던 생각은 여전하지만 그 실현은 이미 물 건너갔거나 요원하다 여겨진다. 물질적 재화에 온전히 사로잡힌 삶을 경원하지만 도무지 재갈은 풀릴 기미가 없다. 아니 모든 것들이 핑계에 불과한지 모른다. 나를 포승하고 있는 것들이야말로 실체 없는 헛것에 불과한지 모른다.


  그래서 이 생태주의자인 저자가 파묻혀 있는, 거위가 돌아다니고 강아지가 힐끗거리는 시골의 삶을 여전히 동경한다. 나이가 들기 전 손에 든 것들을 (그런 것들이 있다면)공손히 내려 놓고 , 빈손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어떤 삶을 살더라도 후회하지 않겠어, 라는 오기로 변질된 지 오래다.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그것을 놓는데 더욱 많이 힘이 들 것인데, 시간은 자꾸 흐르고 몸과 마음은 무거워지기만 한다.


  <...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삼가기를 바랄 뿐이다” 이 간단한 이치를 백 년가량 열심히 살아온 한 노인이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간은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세 가지 관계를 잘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이고, 둘째는 인간관계이며, 셋째는 생각과 감정 사이의 갈등과 균형의 관계이다. 그런 지셴린이 나이 들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첫 번째 관계다. 이미 시작된 대자연의 분노와 보복에 대한 노인의 우려는 아주 깊다.>


  이런저런 상념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호사라도 되는 것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그것이 혹시 펄프의 낭비일 지언정 다른 낭비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라고 스스로 위무한다. 어떤 강압도 없는, 스스로 책의 지도를 그리고 그것을 따라 읽어 가는 재미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여기 조금은 고집스러워보이는 생태주의자인 저자의 책을 읽으면서 또 몇 권의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챙긴다. 그나저나 언제쯤 이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있을 것인지... 

 

 

최성각 /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 생태주의 작가 최성각의 독서잡설 / 동녘 / 475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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