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건사하는 모든 독서는 치열하니, 그 평범함이 스스로 빛을...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은 ‘다시 본다, 고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글을 묶은 산문집이다. 제목은 “세계는 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계에 꼭 들어맞지 않는다.”라는 독일 시인 슈나이더의 문장에서 따왔다. 엄연히 고전이라고 부를만한 작품들을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읽는 평범한 독서를 지향하였다는데, ‘위대한 책들을 읽고서 혁명을 일으키지도 못했고 인류를 구원하지도 못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한다.
『아름답고 난해한 이 책에서 가장 크게 메아리치는 것은 이 오만한 실존에 대한 저항이다. 블랑쇼는 ’나는 나의 죽음을 절대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고대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p.58, 모리스 블랑쇼의 『문학의 공간』을 읽고 쓴 글 중)
근현대의 고전을 중심으로 한 서평집이라고 부를만한 책에서 몇몇 부분을 발췌하였다. 고전이라고 하지만 다루고 있는 책들 중 극히 일부만을 읽었다. 저자는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저작은 모르는 경우도 (모리스 블랑쇼라는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문학의 공간》이라는 책은 모르겠다) 있고, 저자도 저작물도 전혀 모르겠다 싶은 경우도 (아리엘 도르프만이라는 저자도 『싼띠아고의 마지막 왈츠』라는 책도 처음이다) 있다.
“... 세계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점점 더 가혹해진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극‘이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다. 원래 고대 그리스에서 비극이란 탁월한 이들이나 고귀한 신분의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문학 장르였다... 그러나 이제 고위 계층의 사람들은 비극의 주인공을 자처하지 않는다... 현대의 비극은 평범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칠레 작가 아리엘 도르프만은 이 가혹한 진실을 소설과 연극으로, 시로 전하는 작가이다.” (pp.97~98, 아리엘 도르프만의 『싼띠아고의 마지막 왈츠』를 읽고 쓴 글 중)
그렇지만 설령 그 저자를 모르고 그 책을 읽지 못하였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아도 좋다. 작가의 말을 통해 저작물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고, 저자의 사상에 저도 모르게 다가갈 수 있다. ’현대의 비극은 평범한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었다는 작가의 진단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진단의 전제가 되는 가혹한 진실을 전하는 아리엘 도르프만이라는 작가에게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글을 읽다 한 시인이 쓴 책에 대한 찬사를 발견했다. 당신이 글, 그림, 노래, 영화 그 무엇이든 만들 계획이 있다면 루이스 하이드의 《선물》을 꼭 읽어야만 하는데, 그건 당신이 “제정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이 책은 1983년에 출간된 후 40년 동안 입소문과 선물을 통해 다양한 예술가들 사이를 지하 기류처럼 흘러 다녔다고 한다.』 (p.192, 루이스 하워드 『선물』을 읽고 쓴 글 중)
그런가 하면 위에서처럼 마거릿 애트우드의 찬사를 미끼로 던지면서 소개가 되고 있는 책이 있다면 그 미끼를 덥썩 물지 않을 수 없다. 루이스 하워드의 『선물』을 당장 읽고 싶어 머리가 가려워질 지경이다. 모름지기 책을 소개하는 책이 가져야 하는 가장 첫 번째 미덕은 이와 같아야 한다. 나중에 책을 읽게 되거나 말거나에 상관없이 지금은 당장 읽고 싶어 입이 바짝바짝 말라야 한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멘토는 멀리서 거룩한 지혜의 오라를 뿜어내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멀지 않은 거리에서 같은 곳을 탐험하는 동료 대원이다. 그러니 젊은 시인의 가장 좋은 멘토는 젊은 시인이 아니겠는가. “젊은이들에게 해주실 조언이 있다면?” 노작가 마거릿 애트우드는 에세이집 『타오르는 질문들』에서 이 질문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집사가 고양이에게 하는 충고가 아무리 유용해도(저 아랫집 덩치 큰 수고양이는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고양이는 듣지 않는다. 고양이는 자기 마음만을 따른다. 왜냐하면 고양이는 원래 그러니까.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다.” 물론 젊은이들이 구체적으로 뭔가 듣기를 원할 때는 예외라고 덧붙인다. 그렇지 않을 땐 아무리 유용한 조언을 해도 참견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것을 위세와 구분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럼 지혜로운 노인은 뭘 하지?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축복을!...“ (p.219,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책이나 저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글 자체도 매끄러워 읽기에 좋다. 작가가 책을 대하는 생각은 다루고 있는 책이 차지하는 귄위에 비하여 거창하지 않다. 서문에서 스스로 밝히고 있는 바, ’평범한 독서‘에 충실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평범한 삶들의 부재에도 스스로 빛나는 위대함이라는 것이 있을리 만무하다. 스스로를 건사하는 모든 독서는 치열하니, 그것만이 스스로 빛을 발한다.
진은영 / 나는 세계와 맞지 않지만 / 마음산책 / 232쪽 / 2024
ps. 작가가 다루고 있는 책들은 아래와 같다.
프란츠 카프카 『소송』, 버지니아 울프 『올랜도』, 한나 아렌트 『인간의 조건』, 마르틴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모리스 블랑쇼 『문학의 공간』, 잉에보르크 바흐만 『이력서』, 안나 아흐마토바 『레퀴엠-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 선집』, 실비아 플라스 『에어리얼』, 에밀리 디킨슨 『고독은 잴 수 없는 것』,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끝과 시작』, 아리엘 도르프만 『싼띠아고에서의 마지막 왈츠』, 이바라기 노리코 『처음 가는 마을』, 백석 『백석 시, 백 편』,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패터슨』, 라이너 쿤체 『은엉겅퀴』, 조앤 디디온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알베르 카뮈 『시지프 신화』,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존 버거 『A가 X에게』, 롤랑 바르트 『밝은 방』, 앤 카슨 『녹스』, 루이스 하이드 『선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주인과 하인」,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