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마음의 수수께끼를 푸는 또 하나의 열쇠...
“진화심리학은 발달심리학이나 긍정심리학처럼 전통적인 심리학이 자연스레 가지치기를 하며 생겨난 분과 학문이 아니라 사회생물학자, 진화인류학자, 인지과학자, 심리학자들이 한데 모여 인간 본성에 대해 함께 성찰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범학문적 분야이다...”
우리 인간은 정말 태어나는 순간에는 백지와 같았다가 그 위에 사회적으로 어떤 그림이 그려지는가에 따라 이렇게 바뀔 수도 있고, 저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 인간은 인류 탄생 이래로 쌓이고 쌓여 퇴적된 본능을 저절로 가지고 태어나는 것일까. 다윈주의에 입각하여 인간의 본능과도 같은 마음(?)을 연구한다는 신종 학문인 ‘진화심리학’은 그간 우리의 관점이 전자에 치중하고 있었음에 대하여 말하면서, 우리가 그간 홀대하였던 우리들의 본능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 많은 이들에게 본능은 별로 흥미롭지 않은, 유전적으로 고정된 행동 패턴을 의미한다. 눈을 볼펜으로 찌르는 시늉을 하면 눈꺼풀을 깜박이는 게 당연하다고 사람들은 여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자들이 말하는 본능은 기나긴 진화 역사를 통해 한 종의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지니게 된 심리나 행동 기제의 산물이다...”
사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본능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개념의 본능과는 다르다. 진화심리학에서의 본능은 육체적인 본능이라기 보다는 심리적인 본능을 주시한다. 더불어 우리가 흔히 육체적인 본능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의 이면에는 우리의 선조가 지구라는 자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문제 해결의 노력들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관점이다.
“진화의 역사에서 남성들은 크고 작은 동물들을 낚시하거나 사냥하고, 여성들은 견과, 뿌리, 과일 등의 식물을 채집했다 (물론 이러한 역할 분담은 일반적인 경향을 말한다. 사냥이 특히 힘든 시기에는 남성들도 채집에 참여하는 등 예외가 있었다.)... 사냥감을 쫓다 보면 종종 집에서 아주 머리 떨어진 낯선 곳까지 오게 된다. 사냥을 마친 뒤에는 고기를 짊어지고 가능한 한 빨리 지름길을 통해 집으로 복귀해야 한다. 그래서 남성들은 주변 풍경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머릿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히전시키면서 (마치 3D 액션 게임의 하면처럼 말이다.) 길을 찾는 능력이 발달하였다... 반면에 여성들은 채집에 관련된 공간 탐지 능력에 일가견이 있다 (공간 탐지 능력이라면 뭐든지 남성이 더 뛰어나다는 속설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채집을 잘하려면, 집 주변의 익숙한 장소 안에 있는 다양한 풀과 나무, 바위, 채소, 과일 등을 잘 구별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 훗날까지 기억해야 한다...”
현대 인간의 복잡다단한 육체와 마음의 행간을 읽어내는 데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우리 선조들의 생활 양식을 끌어오는 것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고 진화심리학은 말하는 듯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 책을 읽다보면 현대인들만이 체험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던 고도화된 사회 생활 곳곳에, 진화되기 이전의 또 다른 우리들의 마음이 촘촘하게 감추어져 있음을 확인하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되기도 한다.
“... 인간의 마음은 톱이나 드릴, 망치, 니퍼 같은 공구들이 담긴 오래된 연장통이다. 인간의 마음은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신은 어떤 존재인가 같은 심오하고 추상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지 않았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비바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포식동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진화적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다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때로는 구차하기까지 한)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마음을 본능으로 속단하라고 강권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진화심리학은 현재의 우리들이 겪는 많은 마음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있어 이러한 방법을 써보면 어떻겠느냐라고 넌지시 손을 내미는 것과도 같다. 그런가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의 형편 없는 마음을 바라보면서 무력감을 느낄 때, 모든 것을 선조의 탓으로 돌리기에도 진화심리학은 적합해 보인다. 여하튼 ‘인간의 마음은 과거 환경의 적응적 문제들을 풀기 위해 자연선택된 수많은 해결책들의 묶음’ 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니... 그러니까 모두 우리들만의 탓은 아닌 것이다.
전중환 / 오래된 연장통 : 인간 본성의 진짜 얼굴을 만나다 / 사이언스북스 / 255쪽 / 2010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