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G20 열리던 코엑스의 철조망 밖에서...
*2010년 11월 1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성공적으로(?) G20이 끝난 코엑스에 다녀왔다. 철조망도 걷혔고 길마다 가득하던 경찰들도 사라졌다. 거리는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 가만 보니 지난 일요일 무모한 등산을 감행했던 나만이 홀로 이 거리에서 절뚝거렸다. 그러고 보니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이라는 하나마나한 결론을 내놓은 G20 기간에, ‘경제성장’이라는 신앙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무모함을 유하게 비판하는 쓰지 신이치의 <행복한 경제학>을 읽는 행위야말로 절뚝거림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G20이라고는 하지만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자면 G20 중에서도 상위 대여섯 개 국가로도 충분할 것이다. 어쩌면 G20은 자국의 물건을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수요가 필요한 잘 사는 몇 개 나라와 그 나라의 물건을 사줄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은 되는 또 다른 몇 개의 나라로 이루어진 조합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면서 그렇게 상위에 있는 몇 개 나라로부터 떡고물을 받아먹는 그 (G20에 포함되어 있는 또 다른) 하위의 나라들에게, 우리처럼 너희도 G20에 끼지 못한 다른 나라에 물건을 팔아먹으면 되지 않느냐며 그 노하우를 전수하는 자리가 아닐까.
G20은 또한 거기에 끼어 있는 국가들에게 너희도 살만한 나라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에둘러 전파하며 특권처럼 주어지는 선진국 진입에의 가능성이라는 환상을 선물로 주고, 이와 함께 G20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나라들에게는 얼른 너희도 이 자리에 끼어야지, 하는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그러하니 예측컨대 G20은 조만간 G30이 될 것이고, 결국에는 G7이니 G20이니 하는 숫자가 의미가 없는 세계화의 단계에 돌입하게 되지 않을까.
“돈은 분명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수많은 ‘풍요의 척도’ 가운데 한 가지일 뿐이다. 물질이나 테크놀로지만으로 풍요를 측정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러한 물질적 풍요에 의해 인간의 행복이 정해질 리가 없다...”
사실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에 대한 철학이나 이 책에 나오는 GNH(그러니까 국내 총생산 행복량이라고 할 수 있는)라는 개념 등과 관련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작가의 논리라는 것이 실질적인 전지구적 상황에 대한 개선에 필요한 도움이라기 보다는 장님 문고리 잡는 식의 추상적인 말놀음에 불과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미약하고 희미하나마 이런 생각을 가진 이도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이 각팍한 세상에서 조금 안심이 되지 않는가.
“노인 : 힘도 좋은 청년이 일은 하지 않고 왜 그리 빈둥대고만 있나!
청년 : 일을 하면 뭐가 좋습니까?
노인 : 일을 하면 돈을 받지 않는가!
청년 : 돈을 받으면 어떻게 되나요?
노인 : 부자가 되지.
청년 : 부자가 되면 뭐가 좋은가요?
노인 : 부자가 되면, 음…… 유유자적하며 살 수 있지 않은가.
청년 : 네? 그런 거라면, 저는 이미 하고 있는데요.“
결국 이 책은 너도 나도 위를 향하여 발버둥치는 성장 추구의 세상을 향한, 너도 나도 앞을 향하여 뛰쳐나가려는 속도 추구의 세상을 향한 미욱한 반항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그 반항의 논거로써 저자는 행복과 경제 성장을 거론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행복이라는 개념을 재설정해보고자 하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경제 성장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허상을 파괴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 벌채에 의해 삼림이 사라져갈 때마다 GNP는 상승한다. 또 누군가가 마음의 병으로 치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을 때마다 GNP는 늘어간다... 이러한 GNP 사고방식은 실제로도 사회적 제약이나 환경 파괴는 보이지 않도록 덮어 가리면서 그것들을 경제적 이익으로 보기 좋게 바꿔치기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 되고 있다. 특히 무시무시한 것은 전쟁이야말로 최대 규모의 소비를 유도하고, GNP를 밑바닥에서 들어올리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라는 사실이다. 전쟁을 정당화하려 드는 사람들이 ‘경제성장’을 외쳐대며 정치 사회에 당당히 출현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상을 살고 또 살다보면 저절로 경륜이 쌓이고 노하우도 생겨서 일정한 시점이 되면 당연스럽게 인정도 받고 혜안도 생기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이제는 나이와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남들보다 빨리 새로운 것을 습득하고, 남들보다 넓은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파워를 과시하지 않으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는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 거대한 시대의 조류 속으로 막연하게 휩쓸려 가는 중인 것이다.
“슬로 라이프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돈이나 물건이 많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충분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이자 풍요라고 생각하는 삶이다. 돈을 늘려가는 대신에 시간을 늘려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언제까지고 끝날 줄 모르고 달려가는 ‘빠른 사람이 이기는 경쟁’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물론 저자의 책이 현대 사회의 이 거대한 속도를 지닌 조류를 헤쳐 나가는 데에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이 된다고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않다. 하지만 물에 빠진 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 정상이니, 이 추상적인 행복의 경제학이 지푸라기 정도는 되지 않겠는가. 게다가 지푸라기처럼 두께도 가붓하고 내용도 얇으니 한 번 쯤 붙잡아 보는 것도 세상을 바라 보는 또다른 시각의 섭렵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쓰지 신이치 / 장석진 역 / 행복의 경제학 (幸せって,なんだっけ) / 서해문집/ 240쪽 / 2009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