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여 더욱 담백하게, 깊은 데 있지 않아 더욱 투명하게 읽어낼 수..
1911년에 태어난 2009년에 운명한 중국의 학자, ‘국학대사國學大師’, ‘학계태두學界泰斗’, ‘국보國寶’라는 호칭으로 불리웠으나 이러한 모자를 벗겨 달라고 요구하였으며, ‘먹는 것을 가리지 않는다’ ‘빈둥거리지 않는다’ ‘수군거리지 않는다’ 라는 생활상의 ‘삼불 三不’ 원칙을 신조로 삼았다는 지셴린의 <인생>은 우리 나이로 그의 나이 아흔 일곱인 2006년에 출간되었다. 이미 ‘여든 번이 넘는 봄, 가을’을 맞이한 아흔을 바라보는 시기, 문득 인생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어 쓰기 시작한 칼럼을 모아 놓은 글이다.
세상의 이치에 어느 정도 눈을 떴다고 할 수 있는, 혹은 세상의 이치에 눈을 뜨면 어떻고 그렇지 않으면 어떠하리, 하는 경지에 올랐을 노학자는 세상의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생이 아니라 평범한 늙은이가 구술할 수 있는 인생을 말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글은 조금은 뻔하지만 진솔하기 그지 없다. 평범해 보이지만 담백하고 옅은 듯하지만 투명하여 오랜 시간 읽어도 피곤하지 않다.
<... 진정 똑똑한 사람은 말한다. “내가 한 일은 다른 사람들도 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바보로 여기지 않는다... 스스로를 똑똑하다 여기지 않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자신도 바보가 되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생각들을 가질 때 사회 전체가 똑똑해지고 안정될 것이다.>
이 노학자는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심오한 심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흔하게 발견하는 주변의 풍광에 속해 있음을 길지 않은 글 속에 조근조근 녹여 낸다. 화려하게 멋을 부리지 않게 집요하게 강요하지 않는데도, 아니 그래서 더욱 눈길을 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나이를 먹은 지식인이 후학들에게 혹은 일반인에게 해주는 말들이 곱고 아름답다 여겨진다.
“... 진보와 화합을 실현하려면 무수한 세대에 걸친 공동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자신의 구간을 열심히 달려야 하는 것이다. 수많은 고리로 이어진 사슬처럼 고리 하나하나는 미약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 작은 고리가 없으면 거대한 사슬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모든 세대는 자신만의 막중한 임무를 지니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의 의미와 가치이다.”
간혹 꺼내어 읽어서 좋을 책은 바로 이런 것이다. ‘밥을 먹는 것은 살기 위해서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노학자는 자신의 인생에 방점을 찍고, 화려한 운율을 매기는 대신 꼭 필요한 부분만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러지 못한 우리들을 향하여 다시 한 번 조용조용 이야기한다. 가만히 그 이야기들을 읽고 있는 동안에 이 노학자와 작지만 강한 유대관계를 맺게 된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세 가지 관계를 반드시 잘 처리해야 한다. 첫째는 인간과 대자연의 관계이고, 둘째는 가족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이며, 셋째는 생각과 감정 사이의 갈등과 균형의 관계이다...”
나와 타인 사이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함으로부터 비롯되는 많은 다툼, 나이 들어가는 자들이 보여주는 아집과 그로부터 기인한 다음 세대가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배타적인 처세가 가득하여 혼탁한 세상이고 보니 이 두껍지 않은 책이 더욱 살갑고, 이 노학자의 풍모가 더욱 흥건하게 다가선다. 그러니 이런 말 하나쯤 가까이 놓고 새기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살이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 확실하다. 어쩌면 그것이 이 노학자의 바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넓은 세상, 수많은 중생들은 저마다 타고난 재능도 다르고, 유전자도 다르고, 생활환경도 달라서 각자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 호오관好惡觀 등에 다양한 차이가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것이지, 굳이 남의 것이 옳지 않다고 우길 필요가 없다.”
지셴린 / 이선아 역 / 인생 (季羨林談人生) / 멜론 / 223쪽 / 2010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