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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히친스 《자비를 팔다》

선행의 확산을 위한 눈 감음 대신 진실을 향한 용기를 택하다...

by 우주에부는바람

<1910년 현 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수도인 스코페 시에서 출생. 본명 아그네스 본자 보야지우. 1928년 아일랜드 로렌토 수녀회 입회, 로마 카톨릭 수녀가 되었으며 테레사로 개명. 1950년 인도에 귀화하였으며 사랑의 선교회 설립. 1952년 ‘죽어가는 사람들의 집’ 혹은 ‘순결한 마음의 장소’라고 불리우는 시설을 개설. 1955년 ‘때묻지 않은 어린이들의 집’이라는 어린이 봏시설 개설. 1968년 한센병 환자 공동체인 평화의 마을 개설. 1975년 ‘사랑의 선물’이라는 장기 요양소 개설. 1979년 노벨 평화상 수상. 1980년 인도의 가장 높은 시민 훈장인 바라트 라트나 수여. 1983년 영국 명예 메리트 훈장 수훈. 1997년 캘커타에서 사망, 인도 국장으로 장례. 그녀가 사망할 무렵엔 나병과 결핵,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원과 거처, 무료 급식소, 상담소, 고아원, 학교 등을 포함해 123개 국가에 610개의 선교 단체가 있었다.)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복녀 반열에 올랐으며 시성 절차가 진행중.>


위키백과에서 대략 살펴본 테레사 수녀에 대한 검색 내용을 요약해보자면 위와 같다. 카톨릭 신자이건 아니건, 자신이 종교를 가지고 있건 그렇지 않건 마더 테레사를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앎에는 그녀에 대한 경외의 감정이 깔리기 마련이다. 인류애를 구현하는 살아 있는 성녀의 모습을 그녀에게서 발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에서 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평생을 바친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상 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책을 앞에 놓으면 일단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살아 있는 성녀라고 불리웠던 그녀, 인간과 시의 사이 쯤에 위치한 무결점의 존재로 치부되는 그녀에게도 비판받아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인가?


“... 이 책에서 이어질 논의의 상대는 속이는 자가 아니라 속는 자들이다. 마더 테레사가 어리숙하고 비판 능력 없는 숱한 관찰자들이 숭배하는 대상이라 한들 그게 그녀 탓, 혹은 그녀만의 탓은 아니다. 환상이 만들어지는 점진적 과정에서 마술사는 청중의 도구일 뿐이다. 그는 심지어 스스로 사기꾼이자 영악한 눈속임쟁이라고 밝히면서도 청중을 꼬드길 수 있다. 라틴어 속담에도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속기를 바라니, 속여먹으라.”


아마도 이러한 부담감 때문일터, 책의 가장 앞 부분에 위치하는 건 그녀가 아이티의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의 아내인 미셸 뒤발리에와 찍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어서 광신적인 이단 종교의 우두머리였던 존-로저로부터 받은 1만 달러, 미국 역사상 최대의 사기 사건인 저축대부조합 스캔들의 주인공인 키팅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는 내용들이 뒤를 잇는다. 우리가 보고 듣도록 강요받은 선한 행적의 이면에 있는, 정치적으로 순수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은근슬쩍 넘어가기 힘든 그녀의 또 다른 행적들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들이 그녀에게 가지고 있는 틀에 박힌 찬양의 정서에 균열을 일으키는 셈이다.


이와 함께 작가는 마더 테레사가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표한다. 마더 테레사는 1969년 맬컴 머거리지에 의해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하느님을 위한 아름다운 것> 그리고 맬컴 머거리지 자신이 쓴 동명의 책을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촬영 과정에서 발견된 혹은 발견이라고 지칭된 일련의 빛의 연출은 이후 마더 테레사에 대한 추앙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유한 세계의 사람들은 누군가가, 어딘가에서, 무언가 제3세계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믿기를 좋아하고, 믿기를 원한다. 이런 이유에서, 아무리 대리적일망정 그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그의 동기와 실천을 너무 깊게 파고들려 하지 않는다... 선교가 배달되는 진짜 주소는 후원자와 기부자의 자기만족이지 짓밟힌 자들의 필요가 아니다. 의지할 데 없는 아기들, 버려진 낙오자들, 나환자와 말기 환자들은 동정의 과시를 위한 원자재들이다...”


그리고 이어서 작가는 마더 테레사 그녀 자신으로 대변되는 사랑의 수녀회에 대해서도 미심쩍은 눈길을 보낸다. 그곳에서 일을 했거나 그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육성을 통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그곳의 모습을 전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사랑을 베푸는 그곳에는, 그들의 가난을 구제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그들의 가난을 받아들여야 할 무엇으로 붙박는 종교적 원리주의의 실천, 혹은 그들의 가난을 이용한 종교 사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 수녀들은 자기들이 도우려 애쓰는 그 가난한 이들을 위해 돈을 쓰는 일이 좀체 허용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가난을 호소할 것을, 그리하여 손이 크고 어수록한 사람과 기업들이 더 많은 재화와 봉사와 현금을 내도록 조종할 것을 강요받았다... 마더한테는 가난한 자들의 영적인 복지가 가장 중요했다. 물질적 도움은 그들의 영혼에 도달하는 수단, 가난한 자들에게 하느님이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단이었다...”


사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진실이 희생과 봉사와 관련된 것이라면 눈에 보이는 사실을 거부할 수 있다는 명언도 힘을 잃고 만다. 그러니 작가가 ‘명성으로써 그녀의 행동과 말을 판단하지 않고 행동과 말로써 명성을 평가해보려는 프로젝트’를 시작하한 이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이나 훈계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대중매체에 의한 현대판 우상의 발견이 갖는 독소는 언제든 지적되어야 한다. 비정치적이라는 말이 갖는 순수성이 곧바로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아이러니를 그냥 넘겨서도 안 된다. 작가는 선행의 확산을 위한 눈 감음 대신 진실을 향한 용기를 택했다. 그리고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일련의 용기는 어줍잖은 명분으로 비난 받아서도 안 된다. 종교의 순수성은 바로 이러한 받아들임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크리스토퍼 히친스 / 김정환 역 / 자비를 팔다 : 우상파괴자 히친스의 마더 테레사 비판 (The Missionary Position :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 / 모멘토 / 155쪽 / 2008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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