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도리가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윤리적 도발...
오래 전 절판되었던 《가장 파란 눈》이 지난 7월 다시 출간되었다. 가히 문제적 데뷔작이라고 할만한 작품이었고, 최근 읽은 김유태의 《나쁜 책: 금서기행》에도 금서로 언급이 되어 있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나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떠올리기도 하였다. 사실 《소년이 온다》는 《가장 파란 눈》에 비한다면 순한 맛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책을 치워버리고 싶어하는 사람들 또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토니 모리슨은 1993년 흑연 여성 최초로, 한강은 2024년 아시아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 크리스마스에 차라리 무언가를 느끼고 싶었다. “클로디아, 크리스마스에 어떤 경험을 하고 싶니?” 이것이 알맞은 질문이었을 테고, 그러면 난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무릎 위에 라일락 가득 올려놓고 할머니 부엌에 있는 낮은 의자에 앉아서 할아버지가 나만을 위해 바이올린을 켜는 걸 듣고 싶어요.” 내 몸에 맞게 만들어진 낮은 의자, 할머니 부엌의 안정감과 따뜻함, 라일락향, 음악소리, 그리고 내 모든 감각이 만족되면 좋을 테니, 그다음에는 복숭아맛.』 (pp.37~38)
책은 네 개의 계절을 챕터로 삼고 있고, 첫 번째 챕터인 ’가을‘에 ’나‘가 등장한다. 위의 문단 직전에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페콜라가 등장한다. 모두 읽고 소설의 앞 부분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어쩌면 페콜라의 반대편에 있는 작가의 혹은 소설 속 나인 클로디아의 마음이 페콜라 혹은 페콜라가 그토록 원한 파란 눈이 되어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소환되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 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고 나도 그 집을 나왔지. 밖에 나오니 가랑이가 아팠어. 어떻게든 그 여자를 이해시키려고 애쓰느라 다리를 너무 꽉 조이고 서 있었던 거야...” (p.151)
(다시 한 번 한강을 떠올리게 되는데) 토리 모리슨은 이 작품에서 더없이 시적인 문장들을 종종 구사한다. 지극하고 참혹한 현실을 내용으로 삼고 있지만 그 묘사의 아름다움이 주는 현혹 또한 만만찮다. 소설의 끄트머리에 가면 아예 환상과 현실을 섞어 버리는 지경에 이르는데, 그것은 참혹한 아름다움이 되어 우리 앞에 내팽개쳐지고, 그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서 눈을 피할 도리가 없다.
“... 세상 사람 모두 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위치에 있었다. 백인 여자는 ’이거 해‘라고 말했고, 백인 아이들은 ’저거 줘‘라고 말했다. 백인 남자는 ’이리 와‘라고 했다. 흑인 남자는 ’누워‘라고 했다. 명령하지 않는 존재는 흑인 아이들과 서로서로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전부 받아들여 자기 이미지로 재창조했다. 백인 가정의 살림을 도맡았고, 그래서 다 알았다. 백인 남자가 자기 남편을 때리면 바닥에 떨어진 피를 닦고, 집에 돌아가면 그 피해자의 학대를 견뎌야 했다. 한쪽 손으로는 아이들을 때리면서 다른 쪽 손으로는 그 아이들을 위해 물건을 훔쳤다... 그리고 나서 늙었다.” (pp.170)
토니 모리슨의 소설이 가지는 또다른 강점은 피해자인 흑인 그리고 가해자인 백인이라는 기계적인 이분법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가는 훨씬 다양한 층위의 그리고 하나의 점이 아니라 선으로 존재하는 이 피해와 가해의 연원을 살핀다. 그 때문에 소설은 페콜라의 이야기가 발생하기 이전, 페콜라의 엄마인 폴린 그리고 그 아비인 촐리의 일대기에도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
“그랬다... 흑인 여자아이가 백인 여자아이의 파란 눈을 갈망하고, 그 갈망의 중심에 자리한 참혹함보다 더한 것이 있다면 그런 갈망이 실현되었을 때의 끔찍한 폐해뿐이다... 그애가 받은 손상은 전면적이었다. 허구한 날, 덩굴처럼 이어지는 진초록 날들을, 자기 귀에만 들리는 아련한 북소리에 맞춰 고개를 홱홱 움직이며 거리를 오르락내리락 했다. 팔을 접어 손을 어깨에 얹은 채 파닥거렸다. 날아오르려 영원히 기를 쓰지만 그 헛된 노력이 기괴할 정도인 새처럼. 닿을 수 없는―볼 수조차 없는―마음속 계곡을 가득 채운 푸른 허공만을 응시하며, 날개는 있지만 땅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헛되이 파닥거리는 새.” (p.246)
형식과 내용의 압도적인 결합은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다다라 독자들로 하여금 폭발적인 감응을 불러일으키도록 만든다. 흑인 소녀 페콜라가 파란 눈을 갖게 된 후(?), '누군가와'가 아니라 '어딘가'와 나누는 비현실적인 대화를 지나면서 시작되는 말의 소나기는 따갑다. 피할 도리가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윤리적 도발은 백인이 아니라 흑인을 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면 그 때문에 이 윤리적 책임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고 말았다.
토니 모리슨 Toni Morrison / 정소영 역 / 가장 파란 눈 (The Bluest Eye) / 문학동네 / 264쪽 / 2024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