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도미노처럼, 멈출 수 없는 사건 사고의
지난 밤, 무엇을 읽을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렇게 책 한 권을 골라 침대로 왔다가, 다시 책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다른 책 한 권을 들고 침대로 돌아오기를 두 번쯤 되풀이 했다. 갑자기 팍팍해진 회사일로 아픈 머리를 쉬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렇게 결국 온다 리쿠를 골랐다. (패닉 코미디 소설 어쩌구, 하는 문구가 마음에 든다) 침대에 눕자 쪼르륵 고양이 들녘군이 쏜살같이 내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그렇게 책을 펼쳐 들었지만 이내 후회를 한다. 소설을 읽기에 앞서 등장인물의 한마디, 라는 코너가 있는데 거기에 소개된 사람만 스물 일곱 명이다. 게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까지 한 마리 추가다. 등장 인물들의 한 마디를 읽고 나자 이번에는 도쿄 역의 지도가 등장해 주신다. 이거야 원 서울 시청 역 도면도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판인데, 도쿄 역 지도라니... 이런 경우 책을 읽는 중간중간 다시 앞 페이지로 돌아와서 인물 설명 그리고 지도 속의 장소를 되돌아 봐야 한다.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면서 앞뒤 페이지를 넘나드는 것은 고역이다.)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처음 몇 분간은 등장인물의 프로필을 찾아 책을 오가고는 했지만 곧 그럴 필요가 없어진다. 무수한 등장인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캐릭터는 명료하고 그들이 벌이는 사건은 임펙트가 분명하다. 그러니 그들과 그들에 의해 벌어지는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장을 넘기는 속도 또한 빨라지고, 그 속도는 책의 앞을 향한 후진을 용납하지 않는다. 한 번 쓰러지기 시작한 도미노가 반대 방향을 향할 수 없듯이...
소설은 은행원 유코가 상사의 심부름으로 간식거리를 사러 가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유코가 근무하는 보험회사는 실적 마감을 정리해야 하는 마지막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가하면 남자의 배신에 몸서리 치는 여자 카요코는 호텔에서 마사히로를 기다리는 중이다. 오늘 카요코는 마사히로를 죽일 작정을 하고 있다. 카요코가 기다리는 그 호텔에는 자신의 영화를 홍보하기 위해 들른 필립 크레이븐이 묶고 있으며, 미스터리 연합회의 차기 회장을 뽑기 위한 시합을 진행 중인 하루나와 타다시는 필립 크레이븐의 영화를 보며 치른 첫 번째 경쟁 이후 다시 이 호텔까지 오게 된다.
그런가하면 아즈마 순사쿠는 하이쿠 동호회 사람을 만나기 위해 도쿄에 올라오는 길에 테러리스트 조직 ‘얼룩끈’의 폭탄 제조가 켄타로와 부딪치고 그만 봉투가 바뀌게 된다. 게다가 엉뚱하게 장소를 잘못 찾는 바람에 전직 형사들로 이루어진 동호회 사람들과는 다른 장소를 찾아가게 된다. 그들이 이러고 있는 사이 유코가 일하는 보험회사의 영업부장은 지하철이 멈추는 바람에 전직 폭주족인 직원 에리코의 도움을 받아, 또 다른 폭주족의 일원인 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겨우겨우 시간에 맞춰 회사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경찰 카즈히코의 명령에 따라 수십 대의 경찰차가 켄지를 체포하기 위해 도쿄 역에 나타난다.
그리고 도쿄 역에는 조금 전 뮤지컬 <에미>의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서로를 좀더 잘 알게 된 소녀 마리카와 레이나도 도착해 있다. 여기에 순사쿠의 봉투를 낚아 채서 달아나려는 켄타로를 몸으로 막은 유코와 드디어 동호회원 순사쿠를 발견한 네 명의 전직 경찰, 마사히로를 죽이려고 준비한 독약 캡슐을 스스로 삼켜버린 카요코, 카요코를 살리기 위해 그녀를 찾아다니는 미스터리 연합회 회원들과 기를 살필 수 있는 쿠미코, 얼떨결에 이들과 합류해서 자신의 도마뱀을 찾아다니는 영화 감독, 켄타로와 같은 테러리스트 조직인 두 명의 사내까지 가세하면서 도쿄 역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으로 치닫는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쉴새 없이 이어지는 사건과 사고들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정교하게 축조되어 있다. 하나라도 잘못 놓이면 쓰러지기를 멈출 수도 있는 도미노를 쌓는 심정이었을 작가는 사건과 사고와 인물들의 간격을 자로 잰듯 정확하게 맞춰 놓고 있다. 그러니 적당히 읽다가 잘 생각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도, 여지 없이 그 마지막 페이지에 당도하고 말았다. 쓰러지는 도미노라도 된 것처럼 멈추지 못하고...
온다 리쿠 / 최고은 역 / 도미노 (ドミノ) / 402쪽 / 북홀릭 / 2010 (19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