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지만 묘하게 안스러운 젊은 세대를 떠올리며...

by 우주에부는바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에 어울릴만한, 그러니까 가벼운 문체에 읽기에 버겁지 않으면서 안정된 호흡을 유지함으로써 읽는 이를 부담스럽게 만들지 않고,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캐릭터 구축이 잘 되어 있어서 지루하지 않은 작품의 전형이다. 여기에 고양이 한 마리가 슬쩍 끼어놨으니 바로 지금 우리들 주변의 트렌드를 따라 가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다고 봐야겠다.


“... 그때 떠오른 단어들이 바로 녀석이 먹어치운 샐러드와 LCD 화면 속에서 뛰고 있던 설기현의 울버햄튼이었다 - 샐러드보다는 사라다가, 햄튼보단 햄버튼이 바음하기가 더 편해서, 나는 녀석의 이름을 사라다 햄버튼이라고 붙였다.”


주인공인 나는 방사선과에서 일을 했고 초등학교 동창인 S와 동거를 하면서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하였으나, 어느 날 S가 떠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뀌게 된다. 무단으로 병원에 나가지 않아서 일자리를 잃었고,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인 듯 헝클어진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아메리카쇼트헤어 종의 고양이 사라다 햄버튼을 어느 날 갑자기 스르륵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였다.


“... 주변에 남아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스물네 평짜리 주공아파트와 백삼십만원을 주고 산 삼성 노트북, 4행정 클래식 스쿠터, 삼천만원 정도 잔고가 남아 있는 통장과 LG 휴대폰,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라다 햄버튼이 있었다. 물론 그 외에 칠백 권 가까이 되는 책들과 대학 동아리 선배들로부터 배운 덕에 제법 연주 흉내를 내게 된 베이스기타, 시계, 구두, 목걸이, 두 달 치 월급을 털어 구입한 42인지 LCD 모니터 벽걸이 텔레비전, 반다이 게임기도 있었지만. 순간 내 머릿속에는 불행하게도 ‘난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 아닐까?’ 라는 절망감이 스멀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쓰레기 더미 위에서도 꽃이 핀다고 했던가. 사라다 햄버튼이 나타난 것을 필두로 하여 이 고독해진 인생에도 조금씩 색다른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돌아가신 어머니의 남편이자 자신이 생부로 알고 지냈던, 어머니와 이혼한 후에는 캐나다로 가서 그곳 여자와 결혼을 한 아버지가 방문을 한 것이다. 그리고 즐겨 찾는 카페 달리웨이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R과도 간혹 데이트를 하는 사이로까지 발전을 한다.


“... 고독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할머니가 그러셨거든요.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고독하고 외로워진다고. 그래서 항상 죽음과 고독에 익숙해져야 한다구요.”


그러나 이처럼 어른스러운 멘트를 날릴 줄 아는 R은 자신 학교의 일본어학과 교수를 따라 떠나게 되고, 갑자가 나타난 고양이탐정은 사라다 햄버튼의 전 주인에 대한 정보를 넘겨줌으로써 자신의 유일한 식구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에 대한 소유권을 헷갈리게 하는가 하면, 사라다 햄버튼이 어떤 연유로 자신의 집으로 오게 되었는지에 얽힌 은밀한 의구심까지 들도록 만든다.


“... 어쩌면 자네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불행할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낭만이라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선생이나 공무원이 되려고만 해요. 모든 게 불안하니까.”


고독마저도 가벼운 치장처럼 여기게 만드는 가벼움이 가득한 소설이지만 의외로 현재의 세대에 대한 안스러움도 드러낸다. 물론 이러한 식의 안스러움 조장은 배부른 소리일 따름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이 소설은 문학동네의 작가상 아닌가. 어딘가 빈둥거리는 듯하지만 묘하게 속은 있는, 반대로 어딘가 쓸쓸하겠군 싶다가도 묘하게 배부른 소리 하고 있네 하며 한 소리 던지고 싶어지는 그런 소설이랄까.



김유철 / 사라다 햄버튼의 겨울 / 문학동네 / 192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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