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란 《A》

호기심 가득한 여성 집단의 향연이 헐겁기 그지 없는 비즈니스 모델로 변할

by 우주에부는바람

“주홍 글자 A는 혹시 아마조네스의 A였을까. 종족을 불리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많은 남자들에게 선물로 보냈다던 아마조네스 부족처럼 자신을 닮은 여자 역시 스스로 김준의 선물이 된 건 아닐까...”


A라는 제목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하성란의 소설은 <주홍 글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속 A는 간통이라는 본래의 의미를 벗어나 홀로 무한한 확장을 거듭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점이 바로 클래식, 고전이라는 타이틀의 원인일 것이다. 그렇지만 하성란의 A는 자신을 규정하지 않음에 대해 발설한다. 자, 여기 이렇게 어정쩡하게 A라는 글자를 내놓으니 이렇게 저렇게 확장을 시켜 보라고 강요하는 듯하다. 그런데도 자꾸 독자인 나는 아마조네스의 A로만 수렴하니 그것이 참 이상하다.


소설은 신신양회를 중심으로 한 여인3대의 이야기이다. 코르사코프 증후군으로 청소년 시절에 눈이 먼 나를 중심으로 나의 엄마인 서정화, 그리고 나는 기태영의 아이를 낳는다. 여자에게서 여자에게로 이어지는 일종의 종교, 라고 여겨졌던 이 집단의 실체가 결국 밝혀지기는 하지만 이들의 우의는 변함이 없다. 물론 이들의 전투력은 아마조네스에 비하여 미약하고, 실체는 허약하지만 말이다.


“... 프랑스의 한 소설가는 미래에는 순수한 모계 사회가 도래할 거라고 내다봤다. 남자들이란 기껏 여자들의 쾌락에 이용되는 장난감 신세로 전락하고 말 거라고. 여자들 스스로가 여자의 수를 줄이고 있다고 했다. 뱃속의 아기 성별을 알아 여자아이인 경우 낙태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했다...”


사실 소설의 서두 부분을 읽노라면 엄마와 어머니라는 단어가 함께 등장하여 독자를 헷갈리게 만든다. 엄마와 어머니, 그리고 다수의 이모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 엉거주춤이 삼촌이 하나 끼어 있는 집단의 왁자지껄한 모습은 작가의 손끝에서 오밀조밀 잘 묘사되고 있지만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다음 순간 이들은 눈이 먼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러니까 눈이 아니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시선으로) 집단 자살을 감행함으로써 아연실색의 경지로 넘어간다.


그렇게 화면은 바뀌고, 이제 나의 엄마와 어머니와 이모의 시대는 저물고 나와 나의 자매들의 시대가 도래한다. 그들은 집단 자살과 사교 혐의로 얼룩진 신신양회에 다시금 모여든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들과 함께 자란 남자 아이 기태영이 있었다. 그리고 기태영을 중심으로 한 이들 자매 부대는 신신양회의 높은 굴뚝에 비둘기를 그려 넣는 것으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지만, 그 영화는 그리 길지 않다.


여기에 연예인인 김준과 김준의 친구이며 기자인 최영주가 가세하면서 사이비교에 대한 르뽀인가 싶었던 소설은 기업의 검은 비밀에 대한 르뽀로 넘어갔다가 아버지의 배다른 자식들이 등장하는 미니시리즈류로 이어진다.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호기심 자극하는 집단의 정체는 의외로 싱겁다. 그들에게 딱히 지향하는 바가 있는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너무 많고 그들의 역할은 중복되거나 생뚱맞을 뿐이다.


“... 여자애가 신발을 벗었다. 마루에 올라서기 위해 여자애가 한쪽 다리를 마루 위로올려놓았다. 여자애의 치맛속으로 햇빛이 비쳐들었다. 정오의 햇빛이 그 속에서 올챙이처럼 다글거렸다...”


그런데도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건 그저 하성란이 보여주는 안정된 문장 덕분이라고 해야겠다. 계간지 <자음과모음>에 연재되었다고 하는데, 역시 그러한 연재를 기반으로 한 장편소설은 그 밀도가 높지 않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여자에서 여자로 이어지는 이들의 기막힌 운명이 폄훼 되지 않기 위해서는 보다 촘촘한 직조가 필요했으리라...



하성란 / A / 자음과모음 / 284쪽 / 20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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